유 효렴은 능히 전생의 일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는 고인이 된 나의 형 문분과 같은 해의 과거에 급제한 이로써

일찍이 자신이 전생에서 겪은 일들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첫 번째 전생에서 그는 벼슬아치였는데 살아생전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예순두 살이 되던 해 그는 죽어서 저승에 갔다.

처음 염라대왕과 상면했을 때는 염라대왕도 그를

향리의 원로로 대우하며 예의를 갖춰 자리에 앉히고 차도 권했다.

그가 염라대왕의 찻잔을 힐끗 훔쳐보았더니 찻물이 맑고도 투명하여

자신의 잔에 든 것 같은 뿌연 막걸리 빛깔이 아니었다.

그는 내심 이것이 바로 사람이 죽은 뒤 과거를 잊게 만든다는 미혼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그는 염라대왕이 다른 곳을 쳐다보는 사이

찻물을 탁자 귀퉁이에 쏟아버리고 짐짓 다 마신 것처럼 위장했다.


잠시 뒤 염라대왕은 그의 과거 악행이 기록된 장부를 들춰 보고 잔뜩 화를 내더니

뭇 귀신들에게 그를 끌어내 말로 변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귀신들은 곧 그를 결박 지어 어디론가 끌고 갔다.


마침내 그들은 한 민가에 다다랐는데 문지방이 대단히 높아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나가지도 물러서지도 못한 채 우물거리는 사이

귀신은 그를 향해 있는 힘껏 회초리를 휘둘렀다.

그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가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자신은 어느새 말구유 아래 누웠는데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정 말이 망아지를 낳았어요. 수놈이네요."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히 깨달았지만 안타깝게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참기 어려운 허기까지 몰아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암말에게 매달려 젖을 빨았다.


사오 년이 지나자 그는 우람한 덩치의 명마로 자라났다.

하지만 언제나 회초리가 무서워 채찍을 보기만 하면 무서움에 가만있지 못하고 날뛰곤 하였다.

주인이 탈 때는 반드시 장니를 두르는 데다 고삐도 천천히 죄어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복들이나 마부가 다룰 때면 안장도 얹지 않고 달리면서

양발의 복사뼈로 자신을 때리는데 그 고통이 심장까지 찌르르 울릴 정도였다.


참을 길 없는 분노에 휩싸인 그는 결국 사흘 동안 먹이를 먹지 않다가 저승길로 들어섰다.

명부에 닿자 염라대왕은 벌 받을 기한이 아직 다 차지 않은 것에 대해

수상히 여기더니 그가 고의로 형벌을 기피하려 든다며

말가죽을 벗기고 개로 환생하는 벌을 내렸다.


그는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르면서 떠나가지 않으려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저승의 귀신들이 호된 매질을 가하자 아픔을 참지 못하고 들판으로 달아났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터질 듯한 분노에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땅바닥에 나뒹굴었는데 순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다시 주변을 돌아본 그는 개구멍에 엎드린 자신을 발견했다.

어미 개가 혓바닥으로 몸뚱이를 핥으며 젖을 물려주었으므로

그는 자신이 벌써 인간 세상에 태어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몸통이 굵어진 뒤에는,

똥오줌을 보면 더러운 줄 알면서도 그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곤 하였다.


하지만 그는 결단코 입에 대지 않기로 자신에게 굳건히 맹세했다.


한 해가 지난 다음부터는 늘 울분에 휩싸여

마음 편안한 날이 없었고 언제나 죽고 싶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또다시 형벌에서 도망쳤다는 죄를 뒤집어쓸 것이 두려웠다.

게다가 주인은 또 자신을 귀여워해 잡아먹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일부러 주인에게 달려들었고 허벅지의 살점을 한 움큼이나 물어뜯었다.

주인은 노발대발하면서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고 말았다.


염라대왕은 그가 죽은 까닭을 심문하다가 그 포악한 행동에 화를 내며

곤장을 수백 대나 때리고 아울러 뱀으로 태어나는 벌을 내렸다.


그가 갇힌 감옥은 매우 깊숙한 장소라서 컴컴하기만 할 뿐 햇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너무나 답답했던 그는 벽을 타고 기어올라 지붕에 구멍을 뚫고 바깥으로 나왔다.

다시 자신을 돌아보니 어느새 풀숲 사이를 누비는 뱀으로 변한 것이 확실했다.

그는 살아 있는 생물은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배가 고프면 늘 나무 열매나 씨앗 등을 삼키며 나날을 보냈다.


일 년여가 지나도록 그는 언제나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자살도 안 돼, 사람을 해치는 일은 더욱 안 돼, 

아무리 죽고 싶어도 적당한 방법을 찾아낼 길이 없었다.


하루는 그가 풀섶 사이에 누워있는데 떨그럭떨그럭 수레바퀴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옳다구나 몸을 움직여 재빨리 길 한가운데로 나간 뒤 바닥에 가로누웠다.

수레가 덮치며 지나간 자리에 그는 두 동강이로 토막 난 채 남았다.


저승에 너무 빨리 나타난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염라대왕 때문에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 사실을 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염라대왕은 그가 죄 없이 피살된 점을 고려하여 용서를 결정했고

기한이 차면 다시 인간으로 환생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이가 바로 유 효렴이었다.

유공은 나면서부터 말을 할 줄 알았고 문학 서적이며

역사서를 한번 훑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줄줄 암송하곤 하였다.

신유년에는 과거에 합격하여 거인까지 되었다.

유공은 언제나 다른 이들에게 승마를 즐길 때는 반드시 장니를 두껍게 두르라고 권유했다.

양다리로 얻어맞는 아픔이 회초리보다 훨씬 심하다는 것이 그 까닭이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털북숭이에 뿔이 난 짐승 중에서도 왕후장상처럼 귀한 이들이 끼어있었구나.

까닭이야 물론 그들 가운데 본디부터 털 나고 뿔 달린 치들이 없지 않기 때문이렷다.


이런 때문에 비천한 이가 선행을 쌓는 것은 꽃을 보고자 씨앗을 뿌림과 같으며,

신분 높은 이들이 착한 일을 하는 것은 이미 핀 꽃에 배토를 잘해

뿌리를 튼튼히 감싸 안는 일과도 같다.

씨앗을 뿌리면 자라 꽃을 피울 것이요 배토를 잘하면 꽃나무의 생명이 오래 갈 것이다.


만약 선행을 쌓지 않으면 장차 소금 수레처럼 무거운 짐을 끌면서

굴레와 고삐의 통제를 받는 말로 태어날지니,


그래도 착한 일 하기를 몰라라 하면 거기서 더 나아가

대소변을 핥아먹고 보신탕으로 둔갑하는 개로 태어날 것이다.


그런데 또 착해지길 모른 체하면 온몸에 비늘을 뒤집어쓰고

학이나 황새의 뱃속이나 채우는 뱀으로 태어나기 마련이렷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명대 말년, 청주와 연주 일대에 메뚜기가 발생하여 점차 기현에까지 날아왔다.

기현의 현령은 이 때문에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그가 일과를 마치고 물러나 관아에서 쉬는데 꿈에 한 수재가 나타나 절을 했다.

그는 높은 관을 쓰고 초록색 옷을 입었으며 몸집이 크고 우람한 편이었다.

수재가 메뚜기를 막을 묘책이 있노라고 아뢰자,

귀가 솔깃해진 현령은 그에게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내일 서남방의 길로 어떤 부인이 새끼를 밴 암나귀를 타고 지나갈 텐데,

그 사람이 바로 메뚜기의 신입니다.

붙들고 애걸하면 메뚜기의 피해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현령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어 

곧 술과 안주를 준비해 고을의 남쪽 교외로 나갔다.


한참을 기다리자 과연 머리를 높이 틀어 올리고 갈색 배자를 걸친 어떤 부인이 

혼자 회백색의 나귀를 타고 천천히 북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현령은 곧 향을 사르고 술잔을 받쳐 든 뒤 고개를 조아리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나귀 고삐에 매달리며 길을 가로막았다.


"어르신께서 제게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부인의 질문에 현령은 애걸했다.


"작디작은 땅덩어리입니다. 제발 메뚜기의 피해로부터 비껴가게 해주시옵소서!"


"밉살스러운 유 수재가 혓바닥을 놀리는 바람에 내 비밀이 새나갔구려! 

응당 그놈더러 죗값을 치르게 하고 곡식에는 피해를 주지 않지요."


말을 마치자 그녀는 연거푸 술 석 잔을 들이켜더니 눈 깜박할 새 보이지 않게 되었다.


훗날 메뚜기가 날아와 하늘의 해를 가렸다. 

그런데 곤충들은 밭의 곡식에는 내려앉지 않고 버드나무에만 달려들었다.

메뚜기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버들 잎사귀는 남김없이 뜯어먹혀 모두 사라졌다.

현령은 그제야 꿈에 나타났던 수재가 버들 신이었음을 알았다. 


어떤 사람이 이를 두고 말했다.


"이는 백성들의 고통을 근심하는 현령에게 버들 신이 감응한 것이다."


진정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제양현(濟陽縣)의 축씨촌(祝氏村)에

축씨 성의 노인이 한 사람 살았는데 나이 50여 세에 병들어 죽었다.

식구들이 방 안에 들어가 상복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노인이 부르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이 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노인은 벌써 다시 살아나 있었다.

식구들이 기뻐하며 안부를 묻는데도 노인은 그저 자기 부인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까 길을 떠날 때는 그 무엇도 애석한 것이 없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심산이었소.

그런데 몇 리 길을 가다가 한편 생각해 보니 다 늙은 당신이 홀로 아이들 손에 내버려 져 

그저 다른 사람만 쳐다보며 살 것이 마음에 걸리더란 말이오.

그렇게 살면 어디 사는 재미가 나겠나?

차라리 나를 따라가는 것이 나을 듯하여 다시 되돌아온 거라오.

어서 준비해서 나와 함께 길을 뜹시다.”


모두 노인이 이제 막 깨어나서 헛소리를 하는 줄로만 여기고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노인이 또 한 차례 같은 얘기를 반복하자, 할멈이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기는 해요. 하지만 이제 막 되살아나서 어떻게 바로 죽을 수가 있답니까?”


노인은 손을 휘저어 할멈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아. 집안의 잡다한 일들이나 빨리 처리하시오.”


할멈이 웃으며 물러가지 않자, 노인은 다시 그녀를 채근했다. 

할멈은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가 일부러 한참 시간을 끈 뒤 방안으로 들어와 거짓으로 말했다.


“집안일들은 모두 적당히 잘 처리했어요.”


그러자 노인은 할멈에게 서둘러 옷을 차려입으라고 명령했다. 

할멈이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더니, 노인은 더욱 신경질을 내며 닦달하여 마지않았다.


할멈은 영감의 뜻을 차마 거스를 수 없어 드디어는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며느리와 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모두 속으로 웃었다. 

노인은 자기 머리를 한쪽으로 옮기더니 손으로 베개를 치며 

할멈에게 어서 와 자기 옆에 드러누우라고 일렀다. 할멈이 말했다.


“자식들이 모두 보고 있는데 우리가 나란히 드러눕다니, 그게 무슨 꼴이랍니까?”


그러자 노인이 침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함께 죽는 마당에 뭣이 그리 우습소!”


자식들은 노인이 매우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할멈에게 영감님의 뜻에 따르라고 권유했다. 

할멈은 영감이 말하는 대로 한 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웠다. 

식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또다시 웃었다.


얼마 후 할멈의 얼굴에서 문득 웃음이 사라지더니, 

천천히 두 눈이 감기며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고 코로 숨을 쉬지도 않았다.


노인의 코에 손을 대보니 할멈과 마찬가지였으므로 모두들 그제야 깜짝 놀라며 슬퍼했다. 

강희(康熙) 21년, 축 노인 동생의 며느리가 

필자사(畢刺史)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그 노인은 과거에 무슨 신통한 능력이라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승으로 가는 길이 아득히 먼데 자기 뜻대로 오고 갈 수 있었다니, 정말로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그는 백두자(白頭者)마저 저승까지 동행을 시켰으니, 이 얼마나 여유롭고 침착한 일인가! 사람이 죽어갈 때 가장 헤어지기 어려운 사람은 바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던 사람일 것이다. 만약 노인의 비술이 널리 전파될 수 있다면 매리분향(賣履分香)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는데….


(※ 필자사(畢刺史) : 이름은 제유(際有).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이 가정교사를 살던 집 주인이었다.


백두자(白頭者) : 검은 머리가 흰 머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기로 언약한 사람. 즉 아내 혹은 남편. 


매리분향(賣履分香) : 분향매리(分香賣履)라고도 한다.

조조(曹操)의 유언으로서 ‘문선(文選)’ 권60의 ‘조위무제문서(弔魏武帝文序)’에 나오는,

“남은 향은 여러 부인에게 나눠주거라.

여러 첩은 할 일이 없을 테니 신을 삼아 파는 것을 배우라(餘香可分于諸夫人. 諸舍中無所爲, 學作履組賣也)”고 한 대목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중에 ‘분향매리’는 임종 시에 처첩을 걱정하며 잊지 못함을 뜻하게 되었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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