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 말년, 청주와 연주 일대에 메뚜기가 발생하여 점차 기현에까지 날아왔다.

기현의 현령은 이 때문에 근심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그가 일과를 마치고 물러나 관아에서 쉬는데 꿈에 한 수재가 나타나 절을 했다.

그는 높은 관을 쓰고 초록색 옷을 입었으며 몸집이 크고 우람한 편이었다.

수재가 메뚜기를 막을 묘책이 있노라고 아뢰자,

귀가 솔깃해진 현령은 그에게 꼬치꼬치 따져 물었다.

"내일 서남방의 길로 어떤 부인이 새끼를 밴 암나귀를 타고 지나갈 텐데,

그 사람이 바로 메뚜기의 신입니다.

붙들고 애걸하면 메뚜기의 피해를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현령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들어 

곧 술과 안주를 준비해 고을의 남쪽 교외로 나갔다.


한참을 기다리자 과연 머리를 높이 틀어 올리고 갈색 배자를 걸친 어떤 부인이 

혼자 회백색의 나귀를 타고 천천히 북쪽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현령은 곧 향을 사르고 술잔을 받쳐 든 뒤 고개를 조아리며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 나귀 고삐에 매달리며 길을 가로막았다.


"어르신께서 제게 무슨 용무라도 있으신가요?"


부인의 질문에 현령은 애걸했다.


"작디작은 땅덩어리입니다. 제발 메뚜기의 피해로부터 비껴가게 해주시옵소서!"


"밉살스러운 유 수재가 혓바닥을 놀리는 바람에 내 비밀이 새나갔구려! 

응당 그놈더러 죗값을 치르게 하고 곡식에는 피해를 주지 않지요."


말을 마치자 그녀는 연거푸 술 석 잔을 들이켜더니 눈 깜박할 새 보이지 않게 되었다.


훗날 메뚜기가 날아와 하늘의 해를 가렸다. 

그런데 곤충들은 밭의 곡식에는 내려앉지 않고 버드나무에만 달려들었다.

메뚜기가 지나간 자리에 있던 버들 잎사귀는 남김없이 뜯어먹혀 모두 사라졌다.

현령은 그제야 꿈에 나타났던 수재가 버들 신이었음을 알았다. 


어떤 사람이 이를 두고 말했다.


"이는 백성들의 고통을 근심하는 현령에게 버들 신이 감응한 것이다."


진정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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