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學師)인 손경하(孫景夏)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그와 같은 마을에 살던 아무개가 떠돌아다니는 비적 떼와 마주쳐 살해되었다.

도적이 목덜미를 칼로 내리치는 바람에 아무개의 머리통은 가슴 앞에까지 떨어져 내렸다.

놈들이 물러가자 식구들은 그의 시체를 거두어 메고 가서 땅에 묻으려고 하였다. 

그런데 실낱처럼 가느다란 숨소리가 들려오기에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의 목이 아직도 손가락 하나만큼 끊어지지 않은 채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식구들은 그의 목을 받쳐 들고 다시 떠메어 집으로 돌아왔다. 

만 하루가 지나자 그는 다시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식구들은 숟가락과 젓가락으로 그에게 국과 음식을 떠먹여 주었고,

반년쯤 지나자 상처도 완전히 나았다. 


다시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무개가 두세 명의 친구와 한자리에 있던 중,

어떤 사람이 아주 우스운 이야기를 지껄였다. 

사람들은 일시에 웃음을 터뜨렸고 아무개 역시 박장대소했다.

그가 웃느라고 고개를 끄덕거리는 순간,

예전에 칼 맞았던 자리가 갑자기 터지면서

머리가 떨어지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다 함께 아무개를 쳐다보았을 때는 숨이 벌써 끊어진 다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자리에서 같이 웃었던 사람들을 관가에 고소했다.

모두 돈을 추렴하여 아무개의 아버지에게 건네주고

또 그의 장례 일을 거들어서 이 사건은 가까스로 무마될 수 있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한번 웃음에 모가지가 떨어졌다니, 이는 천고 이래 가장 우스운 이야기일 것이다.

모가지가 실낱처럼 이어졌을 뿐인데도 죽지 않다가

10년이나 지난 뒤에 한바탕 웃음으로 재판까지 가게 되었다니,

이 어찌 그들 두세 명의 이웃이 전생에 아무개에게 빚을 졌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손경하(孫景夏) : 손호(孫瑚).

자는 경하(景夏)로 산동의 제성(諸城) 사람이며 거인(擧人)이다.

강희 4년에 치천현의 유학교유(儒學敎諭)를 지낸 인물로서

‘치천현지(淄川縣志)’ 4권에 그의 사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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