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생은 뼈대 있는 가문의 자식이었다. 

그는 재주가 자못 뛰어났을 뿐 아니라 출세 영달에 대한 꿈도 남달리 원대했다.

마을 밖에 위치한 절에 사는 아무개 중은 평소 황생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훗날 중은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십여 년이 지나서야 마을로 되돌아왔다. 

그는 황생을 보자마자 이런 탄식을 늘어놓았다.


"당신은 벌써 오래전에 과거에 합격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포의 신세란 말이오?

보아하니 당신은 타고난 복이 너무 박하군요.

내가 당신을 위해 저승에서 인간 세상의 복록을 주관하는 분께 뇌물을 써드리지요.

일만 전의 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황생의 대답에 중이 다시 부추겼다.


"당신은 절반만 마련해 보도록 하시오. 

나머지는 내가 당신에게 빌려드리리다. 정해진 기한은 사흘입니다."


황생은 응낙하고 가재도구를 전당 잡히는 등 온갖 수단을 다해 겨우 약속한 액수를 채웠다.

사흘 뒤 중은 약속대로 오천 전의 돈을 가져와 황생에게 건넸다.

황생의 집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었는데

여태까지 한 번도 물이 마른 적이 없는 신기한 우물이었다.

전하는 말로 이 우물은 강과 바다로까지 통한다고 하였다.


중은 돈을 단단하게 꾸려 우물 옆에 놓으라고 명령하더니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절에 도착했을 무렵이 되면 당신은 돈을 우물에 던져 넣으시오.

반 식경쯤 지나고 나면 동전 하나가 위로 떠 오를 텐데, 

그러면 우물에 대고 꼭 절을 해야 하오."


말을 마치자 그는 곧 되돌아갔다.


황생은 도대체 무슨 수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편 생각하니 꼭 효과가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일만 전이나 되는 돈을 우물 속에 던지다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리하여 그는 구천 전은 숨기고 겨우 일천 전의 돈만 우물 안에 던져 넣었다.


잠시 후 우물안에서 별안간 엄청나게 큰 물방울이 솟아나더니 

곧이어 '쟁' 하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꺼졌다.

곧이어 동전 하나가 물 위로 떠올랐는데 크기가 수레바퀴만큼이나 엄청났다.

황생은 깜짝 놀라 엎드리는 즉시 절을 하고 또 사천전의 돈을 우물안에 던져 넣었다.

하지만 돈은 부딪히는 소리만 날 뿐 우물에 뜬 동전에 가로막혀 아래로 가라앉지 못했다.

날이 저물자 중이 찾아와서 황생을 마구 나무랐다.


"어째서 돈을 모두 던져넣지 않았소?"


"벌써 다 던져 넣었습니다."


"저승의 사자가 겨우 일천 전만 받았다 하던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 말에 황생이 더 이상 속이지 못하고 이실직고하자,

중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비열하고 인색한 자는 절대로 큰 그릇이 될 수 없지. 

이것이 바로 당신이 공생으로 일생을 마치는 까닭이라오.

그렇게 인색하지만 않았다면 진사 합격이 바로 코앞에 닥쳤을 것을."


황생이 그 말을 듣고 몹시 후회하며 

다시 한번 도술을 부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중은 한사코 사양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황생이 다시 한번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자기가 던진 돈이 그때까지도 수면위에 그대로 떠 있었다.

그가 두레박을 이용하여 돈을 건져 올리자 

수레바퀴처럼 큰 동전도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해의 과거에서 황생은 부방에 들어 공생이 되었고

죽을 때까지 중이 말한 신세를 모면할 수 없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저승에서도 돈을 받고 공명을 판단 말인가? 

일만 전에 진사 급제라면 너무나 저렴한 가격이다.

하지만 일천 전에 겨우 공생이라면 이는 또 바가지 씌운 값이 아닌가!

공생으로 끝날 뿐 더 이상 급제하지 못한다면 일전인들 어찌 아깝지 않으리오!


(※ 진사(進士) : 중국 명·청 왕조 시절에 끝판 엘리트.

보통 3년에 한 번, 400명 정도만을 뽑았다고 한다. 

참고로 건륭제 연간 중국의 인구가 무려 3억 명이었다.


공생(貢生) : 청나라의 교육기관 국자감(國子監)에서 일정 기간을 학습 후

관직 임명을 기다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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