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양현(濟陽縣)의 축씨촌(祝氏村)에

축씨 성의 노인이 한 사람 살았는데 나이 50여 세에 병들어 죽었다.

식구들이 방 안에 들어가 상복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노인이 부르는 소리가 다급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이 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노인은 벌써 다시 살아나 있었다.

식구들이 기뻐하며 안부를 묻는데도 노인은 그저 자기 부인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아까 길을 떠날 때는 그 무엇도 애석한 것이 없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심산이었소.

그런데 몇 리 길을 가다가 한편 생각해 보니 다 늙은 당신이 홀로 아이들 손에 내버려 져 

그저 다른 사람만 쳐다보며 살 것이 마음에 걸리더란 말이오.

그렇게 살면 어디 사는 재미가 나겠나?

차라리 나를 따라가는 것이 나을 듯하여 다시 되돌아온 거라오.

어서 준비해서 나와 함께 길을 뜹시다.”


모두 노인이 이제 막 깨어나서 헛소리를 하는 줄로만 여기고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노인이 또 한 차례 같은 얘기를 반복하자, 할멈이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도 좋기는 해요. 하지만 이제 막 되살아나서 어떻게 바로 죽을 수가 있답니까?”


노인은 손을 휘저어 할멈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말했다.


“그건 어렵지 않아. 집안의 잡다한 일들이나 빨리 처리하시오.”


할멈이 웃으며 물러가지 않자, 노인은 다시 그녀를 채근했다. 

할멈은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가 일부러 한참 시간을 끈 뒤 방안으로 들어와 거짓으로 말했다.


“집안일들은 모두 적당히 잘 처리했어요.”


그러자 노인은 할멈에게 서둘러 옷을 차려입으라고 명령했다. 

할멈이 자리를 뜨려고 하지 않았더니, 노인은 더욱 신경질을 내며 닦달하여 마지않았다.


할멈은 영감의 뜻을 차마 거스를 수 없어 드디어는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며느리와 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모두 속으로 웃었다. 

노인은 자기 머리를 한쪽으로 옮기더니 손으로 베개를 치며 

할멈에게 어서 와 자기 옆에 드러누우라고 일렀다. 할멈이 말했다.


“자식들이 모두 보고 있는데 우리가 나란히 드러눕다니, 그게 무슨 꼴이랍니까?”


그러자 노인이 침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함께 죽는 마당에 뭣이 그리 우습소!”


자식들은 노인이 매우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할멈에게 영감님의 뜻에 따르라고 권유했다. 

할멈은 영감이 말하는 대로 한 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웠다. 

식구들은 그 광경을 보고 또다시 웃었다.


얼마 후 할멈의 얼굴에서 문득 웃음이 사라지더니, 

천천히 두 눈이 감기며 마치 잠이 든 것처럼 한동안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었고 코로 숨을 쉬지도 않았다.


노인의 코에 손을 대보니 할멈과 마찬가지였으므로 모두들 그제야 깜짝 놀라며 슬퍼했다. 

강희(康熙) 21년, 축 노인 동생의 며느리가 

필자사(畢刺史)의 집에서 고용살이를 하면서 이 이야기를 아주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그 노인은 과거에 무슨 신통한 능력이라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저승으로 가는 길이 아득히 먼데 자기 뜻대로 오고 갈 수 있었다니, 정말로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그는 백두자(白頭者)마저 저승까지 동행을 시켰으니, 이 얼마나 여유롭고 침착한 일인가! 사람이 죽어갈 때 가장 헤어지기 어려운 사람은 바로 한 침대에서 잠을 자던 사람일 것이다. 만약 노인의 비술이 널리 전파될 수 있다면 매리분향(賣履分香)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는데….


(※ 필자사(畢刺史) : 이름은 제유(際有). ‘요재지이’의 저자 포송령이 가정교사를 살던 집 주인이었다.


백두자(白頭者) : 검은 머리가 흰 머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하기로 언약한 사람. 즉 아내 혹은 남편. 


매리분향(賣履分香) : 분향매리(分香賣履)라고도 한다.

조조(曹操)의 유언으로서 ‘문선(文選)’ 권60의 ‘조위무제문서(弔魏武帝文序)’에 나오는,

“남은 향은 여러 부인에게 나눠주거라.

여러 첩은 할 일이 없을 테니 신을 삼아 파는 것을 배우라(餘香可分于諸夫人. 諸舍中無所爲, 學作履組賣也)”고 한 대목에서 유래한 말이다.

나중에 ‘분향매리’는 임종 시에 처첩을 걱정하며 잊지 못함을 뜻하게 되었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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