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신현의 아무개 노인은 바로 우리 고을, 채점 출신 사람이다. 

채점은 성에서 오륙 리가량 떨어진 촌마을로 

노인은 이곳에서 아들과 함께 길가에 여관을 열어 

오가는 행상들을 숙박시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단골손님 중에는 마부도 몇 사람 있어 장삿짐을 운반하는 도중에는 언제나

그 집에 들러 머물곤 하였다. 


하루는 날도 다 저문 황혼 무렵에 네 사람이 나란히 들어오더니 투숙을 원했다.

그러나 여관방은 벌써 꽉 차 만원이었다. 

네 사람이 아무리 궁리를 해도 방도가 없자 

물러서지 않으며 한사코 재워달라고 노인에게 졸랐다.


노인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어느 장소를 떠올리긴 했지만,

손님들이 묵기에는 적당치 않았으므로 몹시 주저하는 눈치를 보였다.


그때 한 손님이 나서서 장담했다.


"어느 곳이 됐든 처마 아래 놓인 잠자리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다른 선택을 하려야 할 수도 없는 형편이니까요."


당시 노인은 며느리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시체를 방 안쪽에 모셔둔 참으로, 

아들은 관을 사러 나가 그때까지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노인은 시신을 모신 빈소이긴 하지만, 

조용한 장소는 그곳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자 

마침내 통로를 거쳐 손님들을 방으로 인도하고 말았다.


안으로 들어서니 탁자 위에는 등불이 희미하게 빛나면서 

그 너머로 시신을 가린 휘장이 둘러쳐져 있고 

망자의 몸에는 누런 빛깔의 종이 이불이 덮여 있었다.

잠자리란 곳을 찾았더니 영전 옆에 딸린 작은 방에 침대가 줄줄이 놓여 있었다.


네 사람은 줄곧 길을 재촉해 왔기 때문에 사뭇 고단했으므로

자리에 눕자마자 코 고는 소리를 차츰 사방에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오직 한 사람만 금방 잠이 오지 않아 몽롱한 가운데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할 따름이었다.

문득 시체가 모셔진 침상 쪽에서 무언가 '찌익찍' 끌리는 소리가 났다.

황급히 눈을 뜨고 바라보니 영전의 등불이 사방을 훤히 비추는 가운데

여인의 시체가 벌써 종이를 걷고 일어나 있었다.


잠시 후 시체는 침대를 내려와 손님들이 잠들어 있는 침실로 스르르 미끄러져 들었다.

여자의 얼굴은 창백한 누런 색깔이었고 생사로 짠 머릿수건이 이마에 둘려져 있었다.

이윽고 그녀는 침상 앞에서 몸을 구부리더니 

정신없이 잠든 세 사람의 동료에게 두루 숨결을 내뿜었다.


나그네는 깜짝 놀라는 한편 여자가 자기에게까지 다가올까 싶어 

살그머니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 숨을 죽인 채 마른침도 삼키지 못하며 동정을 살폈다.


오래지 않아 과연 여자가 다가오더니 다른 손님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숨길을 내뿜었다.

이어 방을 나가는 듯하더니 곧바로 종이 이불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그네가 이불 속에서 머리를 삐쭉 내밀고 살폈더니 

뻣뻣하게 굳은 여인의 시체가 아까와 마찬가지로 누워있는 것이었다.


그는 공포감에 사지를 오그라뜨리며 감히 숨도 내쉬지 못하고 다른 동료들에게 슬그머니 발길질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뾰족한 방법이 없자 

그는 차라리 옷을 꿰입고 도망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그네가 막 몸을 일으키며 옷가지를 걸치려는 찰나, 

또다시 아까와 마찬가지로 무언가 바닥에 이끌리는 소리가 났다.

나그네는 놀라 다시금 엎드리며 이불 속으로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여자가 도로 다가와 연달아 몇 번씩이나 숨을 내쉬고 물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잠시뒤 시신이 놓였던 침상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여자가 다시 자리에 눕는 걸 알 수 있었다.

나그네는 이불 속에서 살금살금 움직여 바지를 손에 넣자마자 

황급히 몸에 꿰고 발은 맨발인 채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시체도 따라 일어나는 품이 어쩌면 나그네를 뒤쫓기라도 할 모양이었다.

여자와의 거리가 휘장 길이만큼 가까워졌을 무렵, 

나그네는 이미 빗장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고 있었다.

시체도 걸음을 재게 놀려 나그네를 뒤쫓아왔다. 

나그네는 달리는 한편 큰소리로 고함을 질렀지만, 

마을 안에서는 깨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잠자고 있는 여관 주인의 방문을 두드려 그를 깨우고도 싶었지만 

여차하면 시간을 지체하다 시체에게 붙잡힐 것만 같았다.


나그네는 마침내 성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바라보며 죽으라고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성의 동쪽 언저리에 이르자 절 한 채가 힐끗 눈에 들어오면서 목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그네는 그 길로 내달려 다급히 절 문을 두드렸다. 

중은 한밤중에 마구 울리는 심상찮은 소리에 깜짝 놀라 얼른 문을 따주지 않았다.

눈 깜짝할 사이 시체가 따라붙어 서로 간의 거리는 한 자 남짓으로 좁혀졌고 

나그네는 다급한 심정에 심장이 오그라 붙는 것만 같았다.

절 문밖으로는 둘레가 사오 자나 되는 거대한 백양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있었다.

나그네는 재빨리 나무 뒤쪽으로 몸을 숨긴 뒤 

시체가 오른쪽으로 돌면 왼쪽으로 피하고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달아났다.

시체는 더욱 성깔이 돋는지 불처럼 화를 냈지만, 

서로가 이미 한밤중의 경주에 지쳐 녹초가 되어 있었다.

시체는 피곤 때문인지 순간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나그네는 식은땀이 흐르고 숨이 가빴지만 억지로 움직여 나무 사이로 몸을 피했다.

별안간 시체가 벌떡 일어났고 두 팔을 벌려 나무를 껴안는 동시에 그에게 일격을 가했다.

나그네는 소스라치게 놀라 그 자리에 엎어졌다. 

시체는 결국 그를 잡지 못하고 나무를 껴안은 채 그대로 뻣뻣이 굳어버렸다.


중은 한참 동안 귀를 기울이다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비로소 엉거주춤 밖으로 나오다 땅바닥에 쓰러진 나그네를 발견했다.

불빛으로 비추니 죽은 것도 같았지만 그래도 심장에는 맥박이 실낱같이 뛰고 있었다. 

중은 그를 둘러메고 안으로 데려갔다.


그날 밤이 다할 즈음, 나그네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중이 뜨거운 국물을 먹이면서 사정을 묻자, 

나그네는 자신이 겪었던 상황을 그대로 설명했다.


이때는 벌써 새벽종이 울린 다음이라 아침의 서광이 어슴푸레하게 깔리는 중이었다.

중이 나무 위를 바라보니 과연 여자 시체 한 구가 매달려 있었다. 

그는 기겁하게 놀라 곧바로 현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현령은 자신이 직접 현장에 나와 상황을 조사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여자의 손을 끌어내리라고 명령했는데 

얼마나 꽉 달라붙었는지 도무지 떼어낼 길이 없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좌우의 손가락 네 개가 흡사 낚싯바늘처럼 완전히 구부러져 

손톱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나무에 깊이 박혀 있었다.


현령이 다시 몇 사람으로 하여금 있는 힘껏 잡아당기게 하자 시체는 그제야 나무에서 떨어졌다.

손가락 박혔던 장소를 다시 살폈더니 마치 옹이가 파인 것처럼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것이었다.


현령은 또 사람을 보내 노인의 집을 수소문하게 했다.

그곳도 마침 시체는 없어지고 나그네는 또 세 사람이나 죽은 채로 발견되어 한창 시끄럽던 참이었다.

심부름꾼이 상황을 설명하자 노인은 그 길로 좇아와 시체를 짊어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그네는 현령에게 울면서 하소연했다.


"네 사람이 길을 떠나 이제 저 혼자만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정을 고향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서 믿게 할 수 있겠습니까?"


현령은 그에게 증명을 써주는 한편 여비까지 보태줘 집으로 돌려보냈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사회자는 기운이 세지는 철포삼 권법을 전수받은 자였다.


그가 손가락 두 개를 나란히 하여 힘차게 내리치면 소 모가지도 끊을 수 있었고,

가로로 찌르면 소 뱃구레에 구멍이 뚫리기도 하였다.


언젠가 그는 구팽삼 이라는 공자의 집에서 무술 시범을 보인 적이 있었다.


그는 허공에 나무토막을 걸쳐놓고 두 명의 건장한 노복을 시켜 

있는 힘껏 잡아당기게 하다가 맹렬한 힘으로 내려치게 하였다.

사회자는 뱃가죽을 드러낸 채 나무토막을 받아냈는데,

순간 '꽝'소리가 들리며 나무토막은 멀리멀리 튕겨 나갔다.


그는 또 자신의 생식기를 드러내 돌 위에 올려놓고 

나무 몽둥이로 있는 힘껏 내려치게 했는데 조금도 다친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도 칼만은 무서워해서 사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황생은 뼈대 있는 가문의 자식이었다. 

그는 재주가 자못 뛰어났을 뿐 아니라 출세 영달에 대한 꿈도 남달리 원대했다.

마을 밖에 위치한 절에 사는 아무개 중은 평소 황생과 교분이 두터운 사이였다.


훗날 중은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다가 십여 년이 지나서야 마을로 되돌아왔다. 

그는 황생을 보자마자 이런 탄식을 늘어놓았다.


"당신은 벌써 오래전에 과거에 합격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포의 신세란 말이오?

보아하니 당신은 타고난 복이 너무 박하군요.

내가 당신을 위해 저승에서 인간 세상의 복록을 주관하는 분께 뇌물을 써드리지요.

일만 전의 돈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황생의 대답에 중이 다시 부추겼다.


"당신은 절반만 마련해 보도록 하시오. 

나머지는 내가 당신에게 빌려드리리다. 정해진 기한은 사흘입니다."


황생은 응낙하고 가재도구를 전당 잡히는 등 온갖 수단을 다해 겨우 약속한 액수를 채웠다.

사흘 뒤 중은 약속대로 오천 전의 돈을 가져와 황생에게 건넸다.

황생의 집에는 오래된 우물이 있었는데

여태까지 한 번도 물이 마른 적이 없는 신기한 우물이었다.

전하는 말로 이 우물은 강과 바다로까지 통한다고 하였다.


중은 돈을 단단하게 꾸려 우물 옆에 놓으라고 명령하더니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절에 도착했을 무렵이 되면 당신은 돈을 우물에 던져 넣으시오.

반 식경쯤 지나고 나면 동전 하나가 위로 떠 오를 텐데, 

그러면 우물에 대고 꼭 절을 해야 하오."


말을 마치자 그는 곧 되돌아갔다.


황생은 도대체 무슨 수작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편 생각하니 꼭 효과가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일만 전이나 되는 돈을 우물 속에 던지다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리하여 그는 구천 전은 숨기고 겨우 일천 전의 돈만 우물 안에 던져 넣었다.


잠시 후 우물안에서 별안간 엄청나게 큰 물방울이 솟아나더니 

곧이어 '쟁' 하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꺼졌다.

곧이어 동전 하나가 물 위로 떠올랐는데 크기가 수레바퀴만큼이나 엄청났다.

황생은 깜짝 놀라 엎드리는 즉시 절을 하고 또 사천전의 돈을 우물안에 던져 넣었다.

하지만 돈은 부딪히는 소리만 날 뿐 우물에 뜬 동전에 가로막혀 아래로 가라앉지 못했다.

날이 저물자 중이 찾아와서 황생을 마구 나무랐다.


"어째서 돈을 모두 던져넣지 않았소?"


"벌써 다 던져 넣었습니다."


"저승의 사자가 겨우 일천 전만 받았다 하던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거요?"


그 말에 황생이 더 이상 속이지 못하고 이실직고하자,

중은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비열하고 인색한 자는 절대로 큰 그릇이 될 수 없지. 

이것이 바로 당신이 공생으로 일생을 마치는 까닭이라오.

그렇게 인색하지만 않았다면 진사 합격이 바로 코앞에 닥쳤을 것을."


황생이 그 말을 듣고 몹시 후회하며 

다시 한번 도술을 부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중은 한사코 사양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황생이 다시 한번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자기가 던진 돈이 그때까지도 수면위에 그대로 떠 있었다.

그가 두레박을 이용하여 돈을 건져 올리자 

수레바퀴처럼 큰 동전도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해의 과거에서 황생은 부방에 들어 공생이 되었고

죽을 때까지 중이 말한 신세를 모면할 수 없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저승에서도 돈을 받고 공명을 판단 말인가? 

일만 전에 진사 급제라면 너무나 저렴한 가격이다.

하지만 일천 전에 겨우 공생이라면 이는 또 바가지 씌운 값이 아닌가!

공생으로 끝날 뿐 더 이상 급제하지 못한다면 일전인들 어찌 아깝지 않으리오!


(※ 진사(進士) : 중국 명·청 왕조 시절에 끝판 엘리트.

보통 3년에 한 번, 400명 정도만을 뽑았다고 한다. 

참고로 건륭제 연간 중국의 인구가 무려 3억 명이었다.


공생(貢生) : 청나라의 교육기관 국자감(國子監)에서 일정 기간을 학습 후

관직 임명을 기다릴 수 있었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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