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제갈성(諸葛城)에 상사우(商士禹)라는 선비가 살았다.

그는 술김에 농담하다가 그 지역 한 토호의 비위를 거스르게 되었다.

토호는 노예들을 사주하여 몰매를 가했고, 상사우는 집으로 들려 오자마자 곧 숨을 거두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의 이름은 신(臣)이고 둘째 아들은 예(禮)라고 불렀다.

또 삼관(三官)이라는 딸도 하나 있었는데 당시 나이가 열여섯 살이었다.


본래 그녀는 시집갈 날을 잡은 상태였는데,

아버지가 갑작스레 변을 당하자 부득이 날짜를 뒤로 미루게 되었다.

두 오라비는 외지로 나가 재판을 걸었지만 그 해가 저물도록 결말은 나지 않았다.

상관의 시가에서는 사람을 보내 어머니를 뵙더니 

거상 기간 중이라도 혼인을 서두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어머니가 그러자고 허락할 뜻을 비치자, 딸이 나서서 이치를 따졌다.


“아버님의 시신이 아직 식기도 전에 혼인을 하다니요? 그네들은 부모도 없답니까?”


약혼자의 집안에서는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하며 다시는 빨리 혼인하잔 말을 꺼내지 않았다.


얼마 뒤 두 오라비가 재판에 이기지 못하고 원통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온 집안이 애통하여 들끓는 가운데,

두 형제는 부친의 시신을 그대로 둔 채 다시 또 소송 벌일 의논이 한창이었다.

삼관이 나서서 이를 만류했다.


“사람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어도 이치대로 처리되지 않으니,

세상일들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장차 두 분 오빠들을 위해 염라대왕처럼 공정한 포청천을 내려주시려나 보지요.

아버님의 유해를 저대로 내버려 두고 어찌 마음이 놓이겠습니까?”


두 오라비는 누이동생의 말을 받아들여 부친을 안장했다.


장례를 마친 그날 밤 삼관은 한밤중에 집을 나가 종적을 감췄다.

어머니는 전전긍긍하며 행여 사위 집에서 그 사실을 알까 봐 

친척이나 친구들에게조차 말을 하지 못했다.

그저 두 아들을 채근하여 삼관의 행방을 찾으라고 은밀히 당부할 따름이었다.

거의 반년을 찾아 헤맸지만, 그녀는 종적이 묘연하여 끝내 소식이 없었다.


때마침 상사우를 죽인 토호가 생일을 맞아 광대들을 부르고 놀음판을 성대히 벌이게 되었다.

그날은 손순(孫淳)이란 광대가 제자 두 명을 데리고 와 일을 거들었다.

한 제자는 왕성(王成)인데 생김새는 평범했지만, 

목청이 꾀꼬리처럼 맑고 아름다워 여러 사람의 칭찬을 들었다.


다른 한 제자의 이름은 이옥(李玉)이었는데 용모가 예쁜 여자처럼 수려했다.

그에게 노래를 시켰더니 익숙하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사양했다.

그래도 억지로 강요하자, 그가 부르는 노래의 태반은 여염의 아낙네들이 즐기는 가요였다.

좌중의 모든 사람이 깔깔거리며 손뼉을 치니, 손순은 부끄러워하며 주인에게 아뢰었다.


“이 녀석은 저를 따라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저 술이나 따를 줄 압니다요.

부디 너무 허물치 마십시오.”


그 즉시 이옥에게는 술을 따르라는 분부가 내려졌다.

그는 오락가락하며 술 시중을 들었는데 주인의 기색을 살피며 비위를 맞출 줄 알았다.

주인은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손님들이 흩어지자 주인은 이옥을 따로 남게 하고 더불어 잠자리에 들었다.

이옥은 주인을 대신하여 잠자리를 정돈하고 그의 신발을 벗기면서 빠짐없이 시중을 들었다.

주인이 음란한 언사로 희롱해도 그는 단지 빙그레 미소나 지을 뿐이었다.

주인은 그에게 홀딱 반했으므로 다른 하인은 모두 내보내고 이옥만 자리에 남겼다.

하인들이 모두 물러가자 이옥은 방문을 잠그고 빗장을 채웠다.

여러 종들은 다른 방으로 몰려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 뒤 방안에서 뭔가 꺽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인 한 놈이 다가가 문틈으로 안쪽을 살폈지만, 방안은 칠흑같이 깜깜해서 보이는 것이 없었다.

하인이 막 몸을 돌이키려는 찰나, 갑자기 ‘꽝’ 하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흡사 무거운 물건이 매달려 있다가 줄이 끊어져 바닥에 떨어질 때 나는 소리 같았다.

그는 황급히 안쪽을 향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안에서는 전혀 응답이 없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불러 모아 문을 밀치고 들어갔더니,

주인은 몸뚱이와 머리가 두 동강이 난 상태였고

이옥은 목을 맸다가 새끼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들보와 그의 목에는 제각기 끊어진 줄이 매어진 상태였다.

모두들 놀라 나자빠지다가 다급히 안채에 알려

집안 식구들을 모이게 했지만 무슨 영문인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었다.

모두들 이옥의 시체를 정원으로 옮겼다.

누군가 그의 신발을 잡았더니 물컹한 느낌이 흡사 발이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신발을 벗겼더니 흰 헝겊이 씌워진 자그만 여자의 발이 드러났다.

사람들은 더욱 놀라면서 손순을 불러들여 어찌 된 일인지를 추궁했다.

손순은 두려워 대답할 바를 모르다가 다만 이렇게 변명했다.


“이옥은 달포 전에 저를 찾아와 제자가 된 자입니다.

주인님의 생신 잔치에 따라오고 싶어해 데려왔을 뿐,

어디 살던 누구인지는 저도 정말로 모른다니까요.”


상복을 입고 있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녀가 상씨 집안에서 보낸 자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그들은 우선 두 명의 하인에게 시체를 지키라고 일렀다.
여자의 얼굴은 그때까지도 산 사람 같았고 몸에는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파수 보던 두 놈은 그녀를 겁탈하기로 은근슬쩍 합의했다.
한 놈이 시체를 붙들고 몸을 앞쪽으로 들이밀며
막 의복을 풀어헤치는 순간 갑자기 뭔가가 머리통을 후려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놈은 결국 입에서 피를 쏟으며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까무러치게 놀란 다른 녀석은 서둘러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모두 그녀를 신처럼 공손히 모시는 한편 이 일을 관가에 신고했다.
관리가 상신과 상예를 심문하자, 형제는 이구동성으로 답변했다.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누이동생이 달아난 지 이미 반년이나 되긴 했습니다만.”

형제에게 시체를 살펴보게 했더니 과연 삼관이 틀림없었다.
관가에서는 그녀를 기특하게 여겨 시체를 두 오라비에게 내주고 매장토록 하였고
아울러 토호의 집안은 복수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사씨는 말한다.


집안에 여자 예양(豫讓)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두 오라비가 어떤 사내였는지 알 만도 하다. 

하지만 삼관의 인품은 길게 노래를 읊조리며 

쓸쓸히 역수(易水)를 건너간 형가(荊軻)에 비겨도 무방할 것이다. 

강물도 그녀에게는 부끄러워 더 이상 흐르려 들지 않을 판인데, 

멍청하게 세속을 따라 부침하는 저 무능한 인간들임에랴! 

원컨대 온 천하의 여자들이 색실을 사 삼관의 초상을 수놓아 받들게 한다면, 

그 공덕은 필시 관우(關羽)를 모시는 것에 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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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도현(益都縣)에 정씨(鄭氏) 성을 가진 형제가 살았는데 두 사람 모두 공부하는 선비였다.


형은 일찍부터 이름이 나 부모는 늘 그에게만 관심을 쏟았다.

또 형을 편애하는 까닭에 큰며느리도 사랑을 받았다.


동생은 성적이 뒤떨어져 부모의 환심을 사지 못했고

그 때문에 작은며느리까지도 미움을 받는 처지였다.


이렇게 사사건건 차별 대우에다 냉대와 후대가 뚜렷이 구분되었으므로 

고부간에는 감정이 자못 응어리진 상태였다.


작은며느리는 늘 남편에게 불만을 토로하곤 하였다.


“똑같은 남자잖아요. 당신은 어째서 나와 아이들을 위해 좀 더 분발하지 못하는 거죠?”


그녀는 마침내 남편과 한방 쓰기를 거부했다.


이로 말미암아 동생은 큰 자극을 받고 분발하여 각고의 노력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그도 차츰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부모도 점차 작은아들을 달리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형에 대한 대우와 비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작은며느리의 남편에 대한 기대는 매우 절실한 것이었다.


어느 해 향시(鄕試)가 치러지게 되자 그녀는 섣달 그믐날 밤에 거울로 점을 쳤다.

막 잠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이 길을 가면서 서

로를 밀치며 장난을 치다가 그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너도 바람 쐬러 가거라!”


작은며느리는 이 말을 듣고 돌아와 곰곰이 생각했지만

좋은 뜻인지 나쁜 뜻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결국은 그대로 접어두고 말았다.


향시가 끝난 뒤 형제는 나란히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두 며느리는 부엌에서 일꾼들에게 내 다 줄 새참을 짓느라

화덕의 뜨거운 열기에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갑자기 말을 탄 통보관이 집으로 달려오더니 형이 거인(擧人)에 합격했다고 알려주었다.

시어머니는 부엌으로 쫓아와 큰며느리에게 일렀다.


“큰애가 합격했단다! 너는 그만 바람 쐬러 가거라.”


작은며느리는 분이 치솟고 억장이 무너져 눈물을 흘리면서 불을 땠다.


잠시 뒤 또 한 통보관이 찾아와 동생도 합격했다고 알려왔다.

작은며느리는 부지깽이를 있는 힘껏 내던지고 일어서면서 소리쳤다.


“나도 바람 쐬러 갈 거야.”


이때는 마음이 격해서 무의식중에 내뱉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바로 거울 점으로 들었던 그 말이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가난 때문에 부모가 자식 대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야 항용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안에서는 본래 화를 내면 안 되는 법이지.

그런데 저 작은며느리는 남편을 자극하여 분발시켰으니

원망이나 일삼는 무도한 자들과는 또한 다른 종류인 것이다.

부지깽이를 내던지고 벌떡 일어선 그 일화야말로 진정 고금을 망라한 통쾌한 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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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가 새집을 샀는데 여우가 들끓는 바람에 고민이었다.

옷가지며 물건들을 어지럽히기는 예사였고

때로는 흙가루를 먹는 음식에 뿌려놓기도 하였다.


하루는 친구가 찾아왔는데 때마침 아무개는 출타 중이었다.

날이 저물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처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내 손님을 대접했다.

손님이 밥상을 물린 뒤 처는 계집종과 더불어 손님이 남긴 음식을 나눠 먹었다.

아무개는 평소 행동이 그다지 단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우는 그가 간직해 둔 최음약을 언제인지 모르게 처가 먹을 죽그릇에 섞어 버렸다.

부인이 식사하는데 음식 안에서 장뇌(樟腦)와 사향(麝香) 냄새가 났다.

계집종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그녀는 모르겠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부인은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잠시도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참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열이 오르고 조갈증은 더해만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 안에 남정네라곤 아까 온 손님뿐이었으므로

그녀는 방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누구냐고 묻자, 부인은 자신을 밝혔다.

손님은 또 용건을 물었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님은 마침내 그녀를 매섭게 물리쳤다.


“나와 당신 남편은 도덕과 의리로 맺어진 친구입니다.

나더러 그런 짐승 같은 짓거리를 하라니, 절대 그럴 수 없소이다.”


부인이 그래도 머뭇거리며 자리를 떠나지 않자, 손님은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내 친구의 학문과 덕행이 네년 때문에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구나!”


그는 창문 너머로 그녀에게 침을 뱉었다.


부인은 너무나 부끄러워 비로소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문득 죽그릇에서 풍겨 나오던 이상한 냄새가 머리에 떠올라

 ‘ 혹시 최음제는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싸둔 최음약 봉지를 찾아보니 과연 탁자 위며

그릇 속에 약가루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녀는 냉수가 이 약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으므로 얼른 물을 떠다마셨다.

순식간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경이었다.

침대 위에서 오랫동안 뒤척이던 그녀는 점차 밝아오는 하늘을 보자

환한 낮에 다른 사람 얼굴 대할 일이 더욱 걱정됐다.

마침내 그녀는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맸다.


계집종이 발견하고 끌어내렸을 때는 숨이 거의 끊어져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침나절이 돼서야 겨우 약간 기척을 할 정도가 됐다.

손님은 밤사이에 슬쩍 돌아가 버리고 없었다.


아무개는 저녁나절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가 자리에 누운 처를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부인은 아무 말도 않고 그저 눈물만 머금을 뿐이었다.

계집종이 마님께서 목을 매달았다고 보고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처에게 이유를 추궁했다.

처는 계집종을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사실을 고백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무개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다 내 음탕함에 대한 징벌이니 당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소?

다행히도 올바른 친구를 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후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었을꼬!”


그는 이때부터 과거의 좋지 못한 행실을 완전히 고쳤고 

여우의 장난도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사씨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집 안에 독약을 감춰두지 말라고 서로 타이르지만 최음약에 대해선 말이 없으니,

이는 흡사 무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침대 밑에 그것을 숨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최음제가 비상보다 무서운 것을 그들이 어찌 알꼬!

최음제를 숨겨 처첩하고만 놀아나도 귀신의 미움을 사게 되거늘,

방탕한 인간들의 음란한 행위야 약을 감춰두는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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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녕(濟寧)의 아무개가 우연히 교외의 절간 밖을 지나다가

유랑승이 해바라기를 하며 이를 잡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지팡이에 매달린 호로병으로 보아

흡사 약장수 같기도 했으므로 그는 농담처럼 질문을 던졌다.


“스님도 양기를 북돋는 방중단(房中丹) 같은 약을 파십니까?”


“있고 말고요.

정력이 달리는 사람은 힘이 좋아지고 음경이 작은 사람은 커지게 하는 약이 있습니다.

먹기만 하면 당장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밤새워 기다릴 필요도 없지요.”


아무개는 몹시 기뻐하며 그 약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중은 가사 자락을 헤치고

좁쌀만 한 크기의 환약 한 알을 꺼내더니 그에게 삼키라고 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아무개가 자신의 음경을 만져보니

예전보다 삼 분의 일 정도가 커져 있었다.

그래도 흡족하지 않았던 그는 중이 오줌 누러 자리를 비킨 틈을 타

가사 자락을 헤치고 두세 알을 움켜쥔 뒤 한꺼번에 그것을 삼켜버렸다.


잠시 뒤부터 음경의 피부가 찢어질 듯 부풀어 오르면서 근육이 뿌리째 뽑히는 듯한 통증이 왔다.

목이 움츠러들고 허리가 낙타처럼 굽어졌지만, 음경은 멈추지 않고 자꾸만 커졌다.

아무개는 공포심에 부들부들 떨었지만 스스로는 해결할 방도가 없었다.


이윽고 중이 돌아와 그의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당신, 내 약을 훔쳐먹은 게 틀림없구려!”


그가 다급하게 환약 한 알을 꺼내 아무개에게 먹이자 음경의 팽창은 비로소 멈췄다.


아무개가 옷자락을 헤치고 자신의 몸을 들여다보니

그곳은 두 허벅지와 굵기가 똑같아져 흡사 세 발 솥 같은 형국이었다.


그는 모가지를 잔뜩 움츠린 채 어기적어기적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부모조차 자식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그의 모습은 벌써 달라져 있었다.


이로부터 아무개는 폐인이 돼 날마다 길가에 드러누운 채 시간을 보냈고

많은 사람이 그의 희한한 꼴을 구경하며 지나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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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태사가 여우에 홀려 병이 들면서 몸이 수척해졌다.


도사에게서 부적을 얻어다 붙이기도 하고 주문을 외기도 하는 등

온갖 수단을 다했지만 그래도 여우가 물러가지 않자,

그는 결국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여우로 인한 수난에서 벗어나길 희망했다.


태사가 길을 떠나자 여우도 그를 따라왔다.

태사는 엄청나게 무서웠지만, 여우에게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하루는 그가 탁주에서 여장을 풀게 됐다.

그가 묵고 있는 여관 밖을 지나가던 의원이 요령을 흔들어

손님을 끌며 자신이 여우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소개했다.

태사는 그를 안으로 불러들였다.

의원이 준 약은 바로 방사를 할 때 먹는 최음제였다.

의원은 그를 재촉하여 약을 먹게 한 다음 방 안으로 들어가 여우와 교접하게 했는데,

태사의 정력은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여우는 놀라고 당황하여 몸을 움츠리면서 제발 그만해 달라고 사정했다.

태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더욱 용맹스럽게 돌진했다.

여우는 몸을 비틀며 빠져나가 보려고 애를 썼지만, 도대체 몸을 뺄 수가 없었다.


한참 뒤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조용하기에 살펴보니,

여우는 제 본색으로 돌아온 채 죽어 있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예전에 나와 동향이었던 아무개 서생은 평소 양물이 큰 것으로 유명했는데,

자기 평생 한 번도 흡족한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사방에 인가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외진 여관에 묵게 되었다.

문득 한 여자가 나타나더니 문도 열리지 않았는데 어느새 방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서생은 그녀가 여우임을 짐작했지만 그래도 기쁘게 맞아들여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바지 끈을 풀자마자 그는 바쁘게 진격해 들어갔다.

여우는 놀랍고 아파서 ‘깨갱’ 하고 우는 소리를 내더니,

매가 사냥감을 덮치듯 느닷없이 창문을 뚫고 달아났다.


서생은 여우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면서

계속 창밖을 내다보며 달콤하고 느끼하게 교성을 질렀다.


하지만 여우는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고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 서생은 정말 여우 퇴치의 맹장이로다!

‘여우를 물리쳐 드립니다’라는 방문을 내걸고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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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채신(寧采臣)은 절강성 출신인데, 

성격이 시원스럽고 품행이 단정하며 자중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다른 사람에게 한다는 말이, 

“내 한평생 아내 말고 다른 여자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한번은 그가 일이 있어 금화(金華)에 갔다가 성의 북쪽에 있는 어떤 절에 여장을 풀었다. 

절 안의 전각과 탑들은 매우 크고 화려했지만, 

쑥대가 사람 키보다 높게 자라난 풍경으로 보아 오랫동안 인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동서로 가로놓인 승방에도 쌍 빗장이 시늉으로만 걸려 있을 뿐이었다. 

다만 남쪽에 있는 작은 건물은 최근에 빗장이 질린 것 같았다.

다시 불전의 동쪽 모퉁이를 살펴보니 아귀에 꽉 찰 듯한 굵은 대나무가 자라고 있고,

계단 아래의 커다란 연못에는 야생 토란이 꽃을 피우는 참이었다. 


영채신은 이곳의 고요하고 그윽한 정경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마침 학사안림(學使案臨) 때문에 금화성 안은 방값이 급등했으므로

그는 이 절에서 묵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리하여 그는 절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면서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저물자 어떤 서생이 나타나 남문의 빗장을 열었다. 

영채신은 황급히 달려가 그에게 인사하면서 이곳에 머무르고 싶다는 자신의 의사를 전했다.


“이곳은 주인 없는 절입니다. 저 역시 여행하던 중 임시로 머무는 처지니까요. 

이렇게 황량하고 썰렁한 절집이라도 계시겠다면 

저 또한 가까이 뵈면서 가르침을 청할 수 있을 테니, 저에게도 잘된 일이지요.”


영채신은 서생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면서 

짚을 깔아 침대로 삼고 판자를 엮어 책상을 만들면서 이곳에 장기간 머무를 작정을 했다.


그날 밤은 달이 무척 밝았다.

맑은 달빛이 물처럼 흐르는 가운데 두 사람은 불전의 낭하에 무릎을 마주하고 앉아 통성명했다. 

서생은 자기를 일러, '연 씨(燕氏) 성에 자는 적하(赤霞)'라고 소개했다.

영채신은 그가 시험을 치러 온 수재가 아닌가 추측했지만,

말투를 들어보니 절강 사람의 말씨와는 전혀 달랐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저는 섬서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서생의 말투는 더없이 소박하고 성실했다. 

이윽고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자 서로 인사한 다음 각자 잠자리에 들었다.

영채신은 잠자리가 낯설어 오래도록 뒤척이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처소의 북쪽으로부터 마치 인가라도 있는 것처럼 희미하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몸을 일으켜 북쪽으로 난 석창(石窓) 아래로 간 다음 살그머니 바깥을 넘겨다보았다.

그러자 나지막한 담장 너머로 작은 집 한 채가 보이면서

마흔 살이 좀 넘은 듯한 부인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또 색깔이 바랜 붉은 옷을 입고 커다란 은비녀를 꽂은 할미도 한 사람 있었는데,

그녀는 구부정하게 허리를 굽힌 채 달빛 아래에서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천이가 왜 이렇게 오래 나타나지 않을까요?”


부인의 푸념에 할미가 응수했다.


“올 때가 거진 되었어.”


“할머님께 무슨 원망하는 말이나 하지 않았어요?”


“그런 소리는 못 들었어. 그러나 기분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더구나.”


“이 계집애에게 너무 끌려가면 안 되겠어요.”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열일곱 여덟 살 가량의 아가씨가 걸어왔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절세미인이었다. 할미가 웃으면서 말했다.


“본인이 없는 데서 그 사람을 말하는 게 아니라더니.

우리 두 사람이 마침 너에 관해 얘기하던 참인데, 

우리 귀여운 애기씨가 소리도 없이 살그머니 왔구먼. 

다행히 네 욕을 안 했으니 망정이지.”


이어서 할미는 또 이렇게 여자를 치켜세웠다.


“애기씨는 정말 그림 같은 미인이야. 

만약 내가 남자라도 너 때문에 혼이 나갔을걸.”


그 말에 여자가 볼멘소리로 대꾸했다.


“할머님, 그만 추켜올리세요. 누가 저 같은 사람을 좋다고나 한대요?”


부인과 여자가 또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영채신은 그들이 이웃집 사람들인 줄 알고 잠자리에 들면서 더 이상 엿듣는 일을 그만두었다.


다시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사방은 조용해지고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가 막 잠이 들려는 순간 누군가 방 안에 들어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황급히 일어나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북쪽 집에 있었던 그 여자였다. 

영채신이 당황하면서 무슨 짓이냐고 묻자, 여자가 웃으며 응수했다.


“달빛이 너무 좋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겠어요. 

당신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네요.”


그 말에 영채신은 정색을 하면서 꾸짖었다.


“남들의 입길에 오르고 싶소? 

나 또한 다른 이들의 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오. 

자칫 한번 실수로 염치와 도리를 모두 잃어버리고 싶은 거요?”


“한밤중인데 누가 알겠어요?”


그러나 영채신은 다시 그녀를 꾸짖었다. 

여자는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뭔가 할 말이 있는 듯하였다. 

영채신이 소리를 지르며, 


“어서 가시오. 그러지 않으면 고함을 질러 남쪽 방의 선비를 깨우겠소”라고 위협하자,


여자는 겁에 질려 그제야 물러갔다. 

하지만 방문 밖으로 나갔다가 금방 되돌아오더니 

황금 한 덩어리를 이불 위에 올려놓는 것이었다.

영채신은 금덩이를 주워 정원 층계로 내던지며 말했다.


“의롭지 않은 재물로 내 호주머니를 더럽히려 들다니!”


여자는 부끄러워하면서 밖으로 나가더니 황금을 주워들고 혼잣말을 했다.


“이 남자 심장은 쇠나 돌로 만들어졌나 봐.”


이튿날 아침, 시험에 참가하려던 난계현(蘭溪縣) 출신의 서생이 

하인 한 명을 데리고 와 동쪽의 승방에 묵었다가 한밤중에 갑자기 죽어버렸다. 

죽은 사람은 발바닥 한가운데에 송곳으로 찌른 듯한 작은 구멍이 나 있었는데, 

거기서 피가 가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두 그가 왜 죽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지나자 하인도 죽었는데, 증상이 그 주인과 똑같았다. 

어둑해질 무렵 연생이 돌아왔기에 영채신이 그 일에 관해 물었더니, 

그는 귀신에게 홀렸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영채신은 평소 성격이 굳세고 올곧았기 때문에 연생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


한밤중이 되자 여자가 다시 영채신을 찾아와 말했다.


“저는 여러 사람을 겪어보았으나 당신만큼 심지가 굳은 이는 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정말 성현처럼 인품이 훌륭하시기 때문에 제가 감히 속이거나 유혹할 수가 없군요. 

저의 이름은 소천이고 성은 섭씨입니다. 

열여덟 살로 요절하는 바람에 이 절 근처에 매장되었는데, 

요물의 협박 때문에 이런 더러운 일을 하게 되었지요. 

낯가죽을 두껍게 하고 사람을 유인하지만, 이는 실로 제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는 절 안에 죽일 만한 사람이 없으므로 야차가 와서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영채신이 그 말에 매우 놀라면서 살아날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자, 여자가 말했다.


“연생과 한방을 쓰면 재앙을 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째서 연생은 유혹하지 않는 거요?”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라서 감히 접근할 수 없답니다.”


“어떤 방법으로 사람을 홀리시오?”


“저를 희롱하고 관계를 갖는 사람에게는 제가 몰래 송곳으로 발바닥을 찌릅니다. 

그의 정신이 혼미해져 인사불성이 되면 그 틈에 피를 뽑아 요괴들에게 먹도록 하지요. 

때론 황금으로도 유혹하는데 사실은 금덩이가 아니고 나찰(羅刹) 귀신의 뼈다귀여서 

누구든지 그걸 갖게 되면 뼈다귀가 그 사람의 심장과 간을 도려낸답니다. 

이 두 가지는 목표로 삼은 사람의 기호에 따라 그때그때 적당한 것으로 골라 사용하지요.”


영채신이 뜻밖의 호의에 고마워하며 야차가 찾아올 때를 물었더니, 

내일 밤이라는 대답이었다.


떠날 때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저는 죄악의 나락에 떨어진 이래 줄곧 구원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당신의 의협심은 하늘을 찌르니 저를 살길로 이끌어 고해에서 구해 주실 수 있을 거예요. 

만약 당신이 저의 뼈를 거둬다 조용한 곳에 묻어주신다면, 

그 은혜는 제게 새 생명을 주시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영채신은 흔쾌히 허락하고 여자가 묻힌 곳을 물었다.


“무덤 곁에 백양나무가 있는데, 

그 위에 까마귀가 둥지를 틀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녀는 문밖으로 나가더니 눈 깜짝할 사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날 영채신은 연생이 다른 곳으로 나갈까 봐 새벽부터 쫓아가서 식사에 초대했다.


아침나절부터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조심스럽게 연생의 기색을 살펴 가며 하룻밤 같이 지내주길 부탁했지만, 

그는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구실로 거절했다.

영채신은 그 말을 못들은 체하면서 억지로 자기의 침구를 날라 그의 방으로 옮겼다. 

연생은 하는 수 없이 잠자리를 옮겨주면서 그에게 당부했다.


“저는 당신이 대장부임을 알고 그 인품을 매우 흠모해 왔습니다. 

저에게 작은 걱정거리가 있는데 갑자기 말씀드리기는 어렵군요. 

다만 보자기로 싼 상자를 몰래 열지만 마십시오. 

만약 제 말을 듣지 않으면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좋지 않을 것입니다.”


영채신은 공손하게 그 말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각자 잠자리에 들었고, 연생은 상자를 창틀 위에 올려두었다.


얼마 후 연생이 코 고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왔다. 

하지만 영채신은 잠이 오지 않아 이리저리 뒤척일 따름이었다. 

일경(一更) 남짓 되었을 즈음,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사람의 그림자가 비쳤다.


잠시 후 그 시커먼 그림자는 창문 쪽으로 다가와 방안을 기웃거렸는데 

그의 두 눈에서는 불꽃이 이글거렸다.

영채신이 공포에 떨면서 연생을 깨우려는 순간, 

갑자기 어떤 물건이 흰 비단처럼 빛을 사방으로 뿌리면서 상자를 뚫고 날아갔다. 

빛살은 창문의 돌 창살을 베어버리고 맹렬하게 앞으로 뻗어 나갔다가 

곧바로 되돌아와 상자 속으로 번갯불처럼 들어가 버렸다.

연생이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켰지만, 

영채신은 짐짓 잠든 척 가장하고 몰래 그를 지켜보았다. 

상자를 받들고 점검하던 연생은 안에서 어떤 물건을 꺼내 

달빛에 비추며 냄새도 맡아보고 이리저리 둘러보기도 하였다.


물건에서는 해맑은 흰 빛이 형형히 뻗쳐 나왔는데,

길이는 두 치쯤 되고 지름이 부추 잎사귀만 하였다. 

이윽고 연생은 그것을 몇 겹으로 단단히 싸더니 원래대로 부서진 상자 안에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어떻게 된 늙은 요물이기에 이다지도 대담할까? 

여기까지 침입하여 내 상자를 다 부서뜨리다니.”


그는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영채신은 너무나 놀랍고 신기하여 몸을 일으킨 뒤 연생에게 무슨 일인지를 물었다. 

아울러 그 광경을 모두 보았다고 고백하니, 연생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이미 친구가 되었으니 무엇을 더 숨기겠습니까? 나는 검객입니다. 

방금도 창문의 돌 창살만 아니었다면 요물은 반드시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겁니다. 

비록 죽이지는 못했지만, 상처는 입혔어요.”


“상자 안에 든 것은 무엇입니까?”


“칼입니다. 조금 전 냄새를 맡아보니 요기(妖氣)가 묻어나더군요.”


영채신이 한번 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는 흔쾌히 물건을 꺼냈는데, 원래는 날이 새파랗게 선 조그만 칼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영채신은 연생을 더욱 미더워하게 되었다.


다음날 창문 바깥쪽을 살펴보니, 땅에는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영채신이 절의 북쪽으로 나가자 보이는 것이라곤 총총히 겹쳐 있는 황량한 무덤들뿐이었다. 

그곳에는 과연 꼭대기에 새들이 둥지를 튼 백양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영채신은 볼일을 다 마치자 행장을 꾸리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서둘렀다.

연생은 술상을 차려 영채신을 대접하면서 그와의 이별을 아쉬워했고, 

또 찢어진 가죽 주머니를 선물로 주며 말했다.


“이것은 칼을 담았던 자루입니다. 잘 보관하면 악귀나 귀신을 물리칠 수 있지요.”


영채신이 그에게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연생은 이런 말로 도리질 쳤다.


“당신처럼 신의가 있고 강직한 사람은 검술을 배우셔도 되지요. 

그러나 당신은 부귀영화를 누릴 분이지 우리와 같은 일에 종사할 부류는 아닙니다.”


이리하여 영채신은 누이동생을 이 땅에 매장했다고 둘러대고 

무덤에서 여자의 유골을 파내 옷과 보자기로 잘 싸서 묶은 다음 배를 빌려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영채신의 서재는 들판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는 서재 밖의 들판에 봉분을 만들어 섭소천의 유골을 장사지낸 뒤 제사를 지내며 축원했다.


“그대의 외로운 처지가 가여워 내 협소한 거처 부근에 장사 지냈소. 

노랫소리나 울음소리가 서로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라오.

바라건대, 다시는 흉악한 귀신에게 능욕당하지 마시오. 

한잔 박주만 올릴 뿐 맛있는 음식은 차리지 못했지만, 이를 탓하지는 말기 바라오.”


그는 기도를 마치고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뒤편에서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


“잠깐만요. 저랑 같이 가요!”


돌아보니 소천이었다. 그녀는 기쁨에 겨워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며 말했다.


“당신의 신의는 제가 당신을 위해 열 번 죽어도 그 은혜를 다 갚지 못할 것입니다. 

청컨대 당신과 함께 돌아가는 것을 허락해 주세요. 

부모님을 뵙고 나서 당신의 첩이 될 수만 있다면 아무런 여한이 없겠어요.”


영채신은 그녀를 자세히 훑어보았다. 

흰 살결에는 발그레한 홍조가 노을처럼 빛나고 있었고, 

발은 흡사 죽순처럼 뾰족하고 가늘었다. 

환한 대낮에 보니까 더욱 아름다운 미인이었으므로 영채신은 그녀를 데리고 일단 서재로 돌아왔다.


그는 소천에게 잠시 앉아서 기다려 달라 당부하고는 

우선 안으로 들어가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전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말에 대경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영채신의 처는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는 중이었으므로 

어머니는 이 일을 처에게 이야기하여 그녀를 놀라게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소천은 벌써 사뿐히 방안에 들어와 날아갈 듯 절을 올리고 있었다. 

영채신이 말했다.


“이 사람이 소천입니다.”


어머니는 놀라 허둥지둥하며 어찌해야 좋을지를 모르는데, 소천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홀몸으로 떠도는 처지로서 부모·형제와도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만, 

요행히 영 공자의 보살핌을 입어 그 은혜가 제 온몸에 미쳤습니다.

바라건대 그분의 시중을 들면서 하늘 같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더니 비로소 말문을 뗐다.


“아가씨가 그토록 내 아들을 생각해 주니 나야 기쁘기 그지없구려. 

하지만 내 한평생 아들이라곤 다만 이 애 하나뿐인데, 

대를 이어야 할 아이에게 귀신과 결혼하라고 할 수는 없소.”


그러자 소천이 얼른 말을 받았다.


“저는 정말로 딴마음은 없어요.

제가 저승 사람이라 어머님께서 믿지 못하시겠다면 오라버니로 섬기는 것은 어떠할지요? 

어머님 곁에서 아침저녁으로 시중을 드는 것이야 괜찮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는 그녀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동정하여 그러라고 허락했다. 

소천은 즉시 영채신의 처에게 인사하러 가려고 했지만, 

어머니가 병자를 성가시게 하지 말라고 만류하자 단념하고 말았다.


소천은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가 어머니를 대신해 요리하고 

마치 오래전부터 그 집에 살아왔던 사람처럼 안팎을 들락날락했다.

그러는 사이 날이 저물었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그녀를 무서워하여 무덤으로 돌아가 자라고 권고하면서 

침대와 이부자리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소천은 어머니의 속내를 알아차리자 곧바로 물러 나왔다.


영채신의 서재를 지날 때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다시 물러서곤 하며 뭔가 무서운 일이나 있는 것처럼 문밖에서만 뱅뱅 맴을 돌았다. 

영채신이 소천을 보고 들어오라고 불렀더니 

그녀는 “방안에 서린 칼의 기운이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군요. 

지난번 여행 중에 모습을 드러내어 당신을 뵙지 못한 것도 사실은 이 때문입니다”하고 말했다. 


영채신은 그것이 가죽 주머니 때문임을 알고 떼어서 다른 방으로 옮겨 걸었다.


소천은 그제야 방안으로 들어와 등잔불 앞에 앉더니 

한동안 아무 말도 않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밤에 글을 읽으십니까? 저는 어렸을 때 ‘능엄경(楞嚴經)’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거진 반 잊어먹고 말았어요. 

부탁드리건대 한 권만 구해 주시면 저녁에 틈나는 대로 오라버님께 가르침을 청하겠습니다.”


영채신은 그러라고 허락했다. 

그녀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 앉아 있으면서 한밤중이 될 때까지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영채신이 그만 떠나라고 재촉했더니, 그녀는 서글픈 표정이 되어 말했다.


“저는 타향에 떨어진 고혼(孤魂)인지라 황량한 무덤으로 돌아가기가 무서워서 그래요.”


“서재 안에 다른 사람이 잘 수 있는 침상이 없네. 

게다가 오라비와 누이동생 사이라면 서로 미심쩍은 짓은 삼가야 하지 않겠나?”


영채신의 따끔한 말에 소천은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양미간에 수심이 어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만 같았다.


그녀는 무거운 다리를 끌며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천천히 문밖에 나서더니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영채신은 그녀가 불쌍해서 집안에 따로 잠자리를 만들어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어머니의 꾸지람이 두렵기도 하였다.


소천은 매일 새벽 어머니께 문안을 드리고 대야에 세숫물을 받아 

시중을 든 뒤 다른 방으로 물러가 집안일을 했는데, 

어느 하나 어머니의 뜻에 거슬리는 것이 없었다.


황혼 무렵이 되면 그녀는 언제나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리고 물러 나와 서재로 왔다. 

그리고 등불을 밝히고 불경을 읽다가 

영채신이 잠자리에 들려는 기색을 보이면 참담한 모습이 되어 물러가곤 하였다.


소천이 오기 전에는 영채신의 아내가 오랜 병으로 누워 있는 바람에 

어머니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소천이 온 뒤부터 신세가 매우 편해졌으므로 

어머니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몹시 기꺼워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그녀에게 익숙해지다 보니 소천을 친자식처럼 사랑하게 되었고, 

드디어는 그녀가 귀신이란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저녁에 그녀를 혼자 떠나가게 할 수가 없어 

마침내는 자기와 한 방에서 기거하게 하였다. 

소천은 막 왔을 당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반년쯤 지나자 차츰 묽게 쑨 죽을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모두 소천을 사랑하여 

그녀가 귀신임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오래지 않아 영채신의 아내가 죽었다. 

어머니는 소천을 며느리로 들일 마음이 있었지만, 

아들에게 이롭지 않을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소천은 어머니의 염려를 눈치채고 틈을 보아 이렇게 아뢰었다.


“일 년이 넘는 세월을 모셔왔으니 응당 저의 사람됨을 아실 것입니다. 

무고한 나그네들을 해치고 싶지 않았던 까닭에 아드님을 따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요. 

저에게 딴생각은 없어요. 

다만 영 공자께서 광명정대하시니 하늘과 사람의 흠모를 한몸에 받으실 것이므로 

저는 그저 그분을 돕고 또 의탁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리하여 몇 년 뒤 제가 그 덕택에 봉고(封誥)를 받게 된다면 저승에서도 영광스럽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도 소천에게 무슨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손을 두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소천이 말했다.


“자녀는 오직 하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적은 장부에 아드님에게는 가문과 조상을 빛낼 아들이 

셋이나 된다고 씌어 있으니, 귀신을 처로 삼았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녀의 말을 믿고 아들과 상의했다.

영채신은 매우 기뻐하면서 잔칫상을 차려놓고 친척들을 초대한 다음 그들에게 결혼을 알렸다. 

어떤 사람이 신부를 보고 싶다고 말하자, 

소천은 대담하게도 화려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천을 쳐다보았는데, 

그녀를 귀신이라고 의심하는 게 아니라 선녀가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것이었다.

이로부터 멀고 가까운 곳을 막론하여 여러 친척들은 

다들 예물을 보내와 축하 인사를 하면서 다투어 소천과 사귀려고 하였다. 

소천은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려 매번 한 폭씩 답례로 선물했는데, 

그림을 얻은 사람은 모두 보물처럼 지키면서 영광으로 생각했다.


하루는 소천이 창문 앞에서 고개를 수그리고 마치 뭔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답답하고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문득 영채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죽 주머니가 어디 있죠?”


“당신이 무서워하기에 잘 싸서 다른 곳에 감춰두었소.”


“저는 산 사람의 기운을 오랫동안 받아왔기 때문에 더 이상 그것이 무섭지 않아요.

꺼내다 침대맡에 걸어놓는 것이 좋겠어요.”


영채신이 무슨 말이냐고 이유를 캐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요 며칠 동안 줄곧 무섭고 불안하기만 할 뿐 마음속이 편치 않아요. 

추측건대 금화(金華)의 요물이 제가 멀리 도망친 것을 원망하여 

조만간 이곳으로 찾아올 것 같습니다.”


영채신이 가죽 주머니를 갖고 오자, 소천은 요모조모 자세히 뜯어본 다음 입을 열었다.


“이것은 검선(劍仙)이 사람 머리를 담았던 주머니예요. 

이 정도로 해어질 때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알 수가 없군요. 

지금 보아도 저는 오싹하고 소름이 끼치네요.”


그녀는 즉시 가죽 주머니를 침대 옆에 건사했고

다음 날에는 영채신더러 다시 방문 앞으로 옮겨 걸라고 지시했다.


그날 밤, 소천은 등불을 마주하고 앉아서 영채신에게 잠들지 말라고 당부했다. 

별안간 어떤 물체가 공중에서 새처럼 떨어져 내리자, 소천은 놀라며 휘장 안으로 몸을 숨겼다. 

영채신이 쳐다보니, 그 물체는 야차처럼 번들거리는 눈깔에

피처럼 새빨간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있었다.


놈은 불꽃을 이글이글 내뿜고 이빨과 발톱을 휘두르면서 앞으로 돌진해 왔다.

방문 앞에 이르자 놈은 뒷걸음질 치며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가죽 주머니로 다가서더니 

마치 잡아채 찢기라도 할 것처럼 손톱을 앞으로 뻗었다. 

주머니는 갑자기 ‘쨍’ 소리를 내면서 광주리 두 개만 한 크기로 커졌다. 

어리어리하는 사이 갑자기 어떤 귀신이 그 안에서 상반신을 내밀더니 

야차를 잡아채서 주머니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지더니 주머니 또한 원래의 크기로 오므라들었다. 

영채신은 몹시 무서우면서도 신기했다. 소천도 밖으로 나와서는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재난은 없을 거예요!”


둘이 함께 주머니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맑은 물 몇 되가 고여 있을 뿐이었다.


몇 년이 지난 뒤 영채신은 과연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되었다. 

소천은 아들 하나를 낳았고, 영채신이 첩을 들인 뒤 그녀와 첩이 각기 하나씩을 더 낳았다. 

세 아들은 모두 벼슬을 했고 명성도 높았다고 한다.




(※ 학사안림(學使案臨) : 학사는 공부를 독려하는 사자. 학정(學政)을 감찰했기 때문에 '학정'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시대에는 중앙정부에서 각 성에 학정을 감찰하는 관리를 파견했고, 각 성의 학사는 3년의 임기 동안 관할 각 부(府)를 돌며 생원 시험을 보았는데, 이를 '안림'이라고 하였다.


봉고(封誥) : 명·청의 제도상으로 일품에서 오품까지의 관리가 황제의 고명(誥命)을 받는 것을

'봉고'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남편이 벼슬길에 올라 아내가 받게 되는 고명을 말한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소년 시절 나는 동자 시에 참가하려고 제남부에 간 적이 있었다.


마침 입춘 무렵이었다. 


관례에 따라 그곳에서는 하루 전날 각양각색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단청으로 곱게 장식한 누각을 세우고

악대를 앞세워 번사로 행진하는 축하 놀이마당을 벌였다.


행사의 명칭은 '봄맞이'였고, 나는 친구 따라 구경꾼들 틈에 끼어 놀이판을 감상했다.

이날은 구경나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는데, 

대청에는 온통 붉은 옷차림의 관리 네 명이 동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였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관리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저 시끌벅적한 인파에 휩쓸리며 귓전을 때리는 북소리에 정신이 어지러울 따름이었다.


문득 어떤 사람이 더벅머리 사내아이를 데리고 멜대를 멘 채 

앞으로 나아가더니 대청 위에 뭐라고 아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온갖 잡스러운 소음이 한꺼번에 들끓는 중이라 무슨 말을 하는지는 또한 들리지 않았다.

오직 대청 위에 늘어앉은 관리들이 너털웃음 터뜨리는 모습만이 보일 따름이었다.

이어 푸른 옷을 입은 아전이 큰소리로 마술판을 벌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 사람은 명을 받들겠다는 시늉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전에게 물었다.


"무슨 판을 벌일 깝쇼?"


아전은 대청 위로 쪼르르 올라가 관리들과 서너 마디 주고받더니

다시 아래로 내려와 마술사에게 가장 잘하는 장기가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계절을 바꿔 식물이 자라게 할 수 있구먼요."


아전은 이 말을 관리에게 고했다. 


잠시 뒤 아전이 다시 아래로 내려와 복숭아를 가져오라고 분부했다.

마술사는 선선히 응낙했다. 

이어 그는 옷을 벗어 대나무 궤짝 위를 가리더니 짐짓 원망하는 자태로 소리쳤다.


"나으리도 참 너무하십니다그려! 

꽁꽁 얼어붙은 얼음이 채 녹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복숭아를 대령한단 말입니까?

안 가져오면 또 어르신의 노여움을 탈 테죠. 이 노릇을 어쩌면 좋담!"


그의 아들이 말참견을 하며 끼어들었다.


"아버지가 벌써 대답을 하셨으니 또 무슨 수로 몸을 빼실려우?"


마술사는 상심한 표정으로 한참을 머뭇대더니 하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춘설이 깔린 초봄에 인간 세상 어디에 복숭아를 찾는단 말이냐? 

다만 서왕모의 과수원은 사시사철 잎이 떨어지지 않으니 

그곳이라면 혹 복숭아가 나올지도 모르겠구나. 

천상에 올라가 훔쳐오는 것만이 방법이겠다."


"아이구! 하늘이 사다리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그런 동네랍니까?"


"다 방법이 있지."


마술사는 곧 궤짝을 열더니 십여 길도 넘을 성싶은 새끼줄 한 뭉치를 꺼냈다. 

그가 끄트머리를 잡고 공중을 향해 힘껏 내던지자 

새끼줄은 뭔가에 걸리기라도 한 것처럼 당장 허공에서 아래로 매달렸다. 

새끼줄은 위로 던질수록 높아져서 까마득한 구름 속까지 빨려 들어가더니

잠깐 사이 마술사의 손안에 든 줄도 동이 났다.

준비가 끝나자 마술사는 아들을 불러 타이르듯 당부했다.


"아들아! 나는 늙고 기력이 쇠한 데다 몸이 무겁고 둔해서 올라갈 수가 없구나. 

네가 한번 다녀와야겠다."


이어 그는 새끼줄의 끝자락을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이 줄을 잡으면 올라갈 수 있어."


아들은 새끼줄을 건네받고 난처한 기색이 역력하더니 당장 원망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버지도 참 멍청하외다! 

이렇게 실처럼 가는 줄에 매달려 나보고 저 까마득한 만 길 하늘 위까지 올라가라니,

만약 중간에 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내 뼈는 어디서 추릴려우?"


그러나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어르며 다정한 태도로 목덜미를 두드렸다.


"내가 벌써 입놀림을 잘못하고 말았으니 후회해도 엎질러진 물이 아니냐. 

수고스럽겠지만 네가 한번 다녀와야 쓰겠다. 

너무 그렇게 투정 부리지 말고.

만약 복숭아를 훔쳐오면 틀림없이 엄청난 상금이 내릴 테니, 

내 꼭 너에게 예쁜 마누라를 얻어주기로 약속하마."


아들은 그제야 줄을 붙잡고 빙빙 휘둘리며 위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손이 움직이면 그때마다 발도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흡사 거미가 거미줄에 매달려 움직이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차츰 구름 속으로 들어가더니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참이 지난 뒤 하늘에서 사발만 한 복숭아 한 개가 떨어져 내렸다.

마술사는 희색이 만면해서 복숭아를 주워들고 윗전에 바쳤다. 

대청 위에서는 돌려가며 한참을 관찰했지만, 그 복숭아가 과연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알아낼 도리가 없었다.


별안간 새끼줄이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마술사는 기겁하며 소리쳤다.


"큰일 났다! 하늘에서 누군가 내 새끼줄을 절단했구나. 

내 아들이 무엇에 기대 아래로 내려올꼬!"


한참이 지나자 또 어떤 물건이 아래로 떨어졌는데 

그것이 자기 아들의 머리통임을 확인한 마술사는 통곡하며 넋두리했다.


"이는 필시 복숭아를 훔치다 과수원 지기에게 발각 난 게야. 

내 아들은 이제 끝장이로구나!"


다시 한참 뒤에 다리 한 짝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잠깐 사이에 몸뚱이의 나머지 부분이 갈가리 찢긴 채 떨어지면서

하늘에는 더 이상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마술사의 슬픔은 이루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는 시체 조각들을 하나하나

궤짝에 주워 담더니 뚜껑을 잘 덮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 늙은이에게 자식이라곤 이놈 하나뿐이었습니다. 

날마다 저를 따라 동서남북을 떠돌았습지요. 

오늘 지엄하신 분부를 받잡다가 뜻밖에도 이런 참변을 당하고 말았군요!

이제는 지고 가서 묻어줄밖에요."


이어 그는 윗전으로 올라가 무릎을 꿇더니 애끓는 어조로 호소했다.


"한낱 복숭아 때문에 제 아들놈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만약 소인 놈을 가엾게 여기신다면 장례 비용이나 좀 보태주십쇼.

그 은혜는 죽어서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요."


자리에 앉은 관리들은 놀라고 또 기괴하게 여기다가 각자 돈을 추렴해 건네주었다. 

마술사는 돈을 허리춤에 단단히 동여매더니 곧바로 궤짝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팔팔아, 얼른 나와 여러 나으리님께 감사하지 않고 무얼 꾸물대느냐?"


그러자 더벅머리 사내아이의 머리통이 궤짝의 뚜껑을 밀치며 

홀연 바깥으로 나오더니 북쪽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바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마술사의 아들이었다.


그 마술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나는 아직까지도 그 일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훗날 백련교의 무리 중에 이런 마술을 구사하는 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정말 백련교도의 후예들이었을까?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이진현에 사는 왕란이 급살 병 때문에 폭사했다. 

염라대왕은 서류를 살피다가 

왕란이 귀졸의 실수로 억울하게 잡혀 온 것을 발견하자 

그를 다시 인간 세상에 환생시키라고 호통쳤다. 


하지만 그의 시체는 벌써 썩어버린 다음이었다.

귀졸은 추궁당할 일이 걱정이었으므로 왕란을 이렇게 꼬드겼다.


"사람이 죽어 귀신이 되면 고생뿐이죠. 

그런데 귀신이라도 신선의 반열에 들면 즐거움이 영원 하단 말입니다.

쾌락만 보장될 수 있다면 구태여 인간으로 돌아갈 필요가 무에 있겠소?"


왕란도 그렇다고 여겼다.

귀졸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여우 한 마리가 사는데 벌써 금단을 완성한 놈이지요. 

그 금단을 훔쳐내 삼키기만 하면 영혼이 흩어지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어디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갈 수도 있어요.

그렇게 살길 원치 않습니까?"


왕란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귀졸은 앞장서서 그를 인도했다.


어느덧 그들은 우장한 자태로 들어선 저택의 문 앞에 다다랐다.

엄청난 규모의 누각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웬일인지 사위는 고즈넉했고 사람의 모습은 그림자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곳에 여우 한 마리가 달빛 아래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우러르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놈의 입속에서는 구슬 한 개가 굴러 나와 달까지 곧장 치솟았는데 

다시 숨을 들이쉬면 아래로 떨어지곤 하였다.

여우는 입으로 냉큼 구슬을 되받아 또다시 하늘로 띄워 올리기를 되풀이하였다. 


귀졸은 슬그머니 여우 곁으로 미끄러져 다가가더니 

놈이 구슬을 뱉을 때를 살폈다가 손으로 얼른 낚아채 왕란에게 건네주며 삼키게 하였다.

여우는 깜짝 놀랐고 발칵 성을 내며 그들을 향해 몸을 돌이켰다. 

하지만 두 사람이 버티고 선 모습을 보자

적수가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적개심에 치를 떨면서 물러갔다.


왕란은 귀졸과 작별한 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처자식들은 가장의 모습을 보고서도 한결같이 공포에 떨며 뒷걸음질 칠 뿐이었다. 

그들은 왕란이 사정을 설명하고 나서야 차츰 다가와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로부터 왕란은 예전과 다름없이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왕란의 친구 중에 장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소문을 듣고 집으로 그를 찾아왔다. 

오랜만의 상봉에 반가워하며 그동안의 안부를 묻던 차에,

왕란은 문득 이런 말을 장 씨에게 꺼냈다.


"나와 자네의 집안 형편이야 원래부터 빈안하지 않은가. 

나는 이제 도술을 부릴 줄 알게 되었으니,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부자가 될 수도 있지.

자네, 나를 따라다니지 않으려나?"


장씨가 혹해서 귀를 기울이자, 왕란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나는 약을 쓰지 않고도 병든 이를 고치며 점치지 않고도 길흉화복을 판단할 수 있다네. 

하지만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날 알던 사람들이 놀라 기절하지 않겠나. 

자네의 몸에 빌붙어 돌아다니면 어떨까?"


장 씨는 또 좋다고 수락했다. 

그들은 당일로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났고 어느덧 산서의 경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 지방의 어떤 부잣집 외동딸이 눈앞이 어지럽고 머릿속이 캄캄해지는 희한한 병을 앓고 있었다.

전후하여 약이며 무당 살풀이며 써보지 않은 것이 없건만 도무지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장 씨는 그 부잣집으로 찾아가서 이 일 때문에 골치를 썩이던 주인에게 

자신의 도술을 과장하여 자랑했다. 

부잣집이지만 자식이라곤 이 딸 하나뿐이던 주인은 항시 손안의 보배처럼

애지중지 여기던 딸의 병을 고쳐주는 사람에겐 천금으로 사례하겠다고 약속했다.

장 씨는 우선 병세를 확인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서자 침상 위에서 눈을 감은 채 

정신없이 누워 있는 아가씨의 모습이 보였다.

이불을 들치고 몸을 어루만지는데도 그녀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왕란은 은밀히 장 씨에게 일렀다.


"혼백이 달아나 생긴 병이야. 내가 가서 되찾아오도록 하지."


장 씨는 곧바로 주인에게 아뢰었다.


"병세가 비록 위급하긴 해도 고칠 수는 있겠습니다."


"무슨 약을 쓰시려오?"


주인의 질문에 장 씨는 약이 전혀 필요치 않다고 말하면서 다만 이렇게 대꾸했다.


"따님의 혼백이 육체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습니다. 

저는 벌써 귀신을 파견하여 그것을 찾아오라고 시켰지요."


대략 두어 시간쯤 지나고 나자 왕란이 홀연히 돌아와 혼백을 찾았다고 일러주었다.

장 씨는 주인에게 다시 딸의 방으로 들어가 그녀의 몸을 주물러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뒤 아가씨는 기지개를 켜면서 반짝하고 눈을 떴다. 

주인은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면서 그녀를 계속 쓰다듬다가 상태를 물었다.


"아까 녘에 정원에서 놀고 있는데 겨드랑에 활을 끼고 새를 잡는 소년이 보이더군요. 

다른 몇 사람이 준마를 끌고 소년의 뒤를 따르고 있었고요.

저는 다급하게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그 사람은 느닷없이 제 앞을 가로막고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제게 활을 넘기며 쏘는 법을 가르쳐주더군요.

저는 부끄럽고 당황스러워 소년을 꾸짖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도 않고 저를 말 잔등에 올려놓더니 자신도 그 귀에 올라타더군요.

그리고 길을 떠나면서 즐거운 얼굴로 말했지요. 

'나는 당신과 노는 것이 즐겁소. 수줍어하지 말아요.


' 몇 리를 달리자 산속에 이르렀고 그때부터 저는 말 위에서 울며불며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소년은 와락 성을 내며 저를 길가로 떨어뜨렸지요. 

집으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길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때마침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저의 팔뚝을 낚아채 질풍같이 앞으로 달리더군요.

눈 깜짝할 사이 집에 도착했고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번쩍 들었지요."


딸의 설명을 들은 주인은 장 씨의 신통력에 더욱 감탄하면서 약속대로 천금의 사례금을 지급했다.


밤이 되자 왕란은 장 씨와 상의하여 이백 금은 노잣돈으로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옮겨 가 자기 집 대문을 두드리고 아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따로 삼백의 돈을 떼어 장 씨 집에 갖다 주도록 명령한 다음에야 되돌아왔다.


이튿날 장 씨는 주인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주인은 돈 자루가 보이지 않자 장 씨를 더욱 기인으로 생각하며 다시금 후한 예물로서 그를 전송했다.


며칠이 지난 뒤 장 씨는 성 밖 교외에서 동향 사람인 하재와 마주치게 되었다. 

하재는 본디 술이나 마시고 도박이나 일삼는 무뢰한으로

생업에 종사하지 않아 거지나 다름없는 빈털터리였는데 

장씨가 이상한 도술을 습득하여 일확천금했다는 소문을 듣자 

일부러 그를 찾아 나선 길이었다. 


왕란은 푼돈이나 쥐여주고 돌려보내도록 장 씨에게 권유했다. 


하지만 하재는 이전의 행실을 고치지 못하고 

받은 돈을 열흘 만에 모두 탕진한 뒤 또다시 장 씨를 찾아가려 마음먹었다. 

왕란은 하재의 심보를 미리 알아차리고 장 씨에게 권고했다.


"하재는 방탕하고 사리를 모르는 자라 그를 곁에 두면 아니 되네. 

돈냥이나 쥐어 보내버리는 것이 상책이지.

그자가 설령 무슨 사고를 치더라도 화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라네."


하루가 지나자 과연 하재가 다시 나타나더니 함께 다니게 해달라고 장 씨에게 떼를 썼다.


"나는 자네가 다시 올 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네. 

날마다 술이나 퍼마시고 노름판에 끼어드니 천금인들 그 밑 빠진 독을 어떻게 채울 수 있겠나? 

만약 진실로 회개하여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내 자네에게 백금의 돈을 희사하겠네."


하재는 좋아라 승낙했고 장 씨는 전대를 털어 돈을 몽땅 그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하재는 장 씨와 헤어지자마자 백금이란 두둑한 거금이 생긴 것을 기회로 

더욱 호기롭게 노름판을 벌였다.

게다가 기생 오입까지 손대 돈을 마치 흙처럼 펑펑 뿌리고 다녔다. 

그 지역의 포졸은 하재의 이런 행실에 의심을 품어 그를 체포했고 

관가로 송치시킨 뒤 모진 고문을 가했다.

하재가 돈의 출처를 사실대로 실토하자 관가에서는 그를 대동시키고 

포졸을 파견하여 장 씨를 잡아들이게 하였다.


며칠이 지난 뒤 하재는 장독 난 자리가 터져 노상에서 죽어버렸다. 

하지만 그의 혼백은 장 씨를 잊지 못해 다시금 빌붙을 생각에 

그를 찾아 나섰다가 마침내 왕란과도 상면하게 되었다.


어느 날 세 사람은 교외의 봉수대에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하재가 만취하여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왕란이 뜯어말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침 그 지방을 순시하던 감찰어사가 그곳을 지나던 중 느닷없는 괴성을 듣고 

수색을 지시했고, 결국 장씨가 체포되었다.

장 씨는 무서움에 떨며 사실을 밝혔지만, 

어사는 화를 내며 곤장을 친 뒤 모든 사정을 신에게 고해 올렸다.


한밤중이 되었을 때, 어사의 꿈에 금빛 갑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조사 결과 왕란은 무고하게 죽은 것이 판명이나 지금은 귀선이 되었노라. 

그가 병든 자를 고친 것은 또한 인술을 행함이니 요망한 귀신으로 처결함은 부당할 것이다. 

이제 그는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청도사를 제수받았도다. 

하재는 사악하고 음탕한 자로 이미 철위산으로 유배되는 벌을 받았다. 

장 아무개는 죄가 없으니 응당 방면함이 마땅하렷다."


어사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기이하게 여기며 곧바로 장 씨를 석방했다.


장 씨는 행장을 꾸려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주머니에는 수백 금의 돈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는 경건한 마음으로 절반을 떼어 왕란의 집으로 보냈고, 

왕 씨의 자손들은 이로 말미암아 부자가 될 수 있었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양천일이 들려준 이야기이다.


"어느 날 생쥐 두 마리가 쪼르르 달려 나오다 

그중 한 놈이 뱀한테 꿀꺽 삼켜지는 광경을 보았네.


다른 한 놈은 아주 원통하고 분한 듯 산초 씨처럼 까만 두 눈을 반짝하고 치켜뜨더군. 

하지만 멀찍이서 바라만 볼 뿐 감히 접근이야 하지 못했지. 


뱀은 배가 부르자 꾸불텅꾸불텅 몸을 휘감아 제 굴속으로 기어들어 가더군.

바야흐로 절반쯤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을 때 

갑자기 쥐 새끼가 달려오더니 뱀 꼬리를 있는 힘껏 깨물어버리는 거야.

뱀은 잔뜩 화가 나서 몸뚱이를 도로 밖으로 빼냈다네. 


생쥐는 원래 영리하고 몸놀림이 민첩한 놈이라 순식간에 도망을 쳤지.

뱀은 생쥐를 쫓아갈 수 없자 하는 수 없다는 듯 방향을 돌이키더군. 


하지만 동굴로 기어들 무렵이 되니까 생쥐가 쫓아와 아까처럼 또 꼬리를 깨무는 거야. 

뱀이 굴로 들어가면 달려오고 바깥으로 몸을 빼면 도망가기를 한참이나 반복했지.


결국, 뱀은 죽은 쥐를 땅바닥에 도로 토해내고 말더군. 

생쥐는 쪼르르 달려와 제 짝의 냄새를 맡아보더니 마치 슬퍼서

탄식하는 듯 찍찍거리고 울다가 죽은 쥐를 주둥이에 물고 사라졌다네."


내 친구인 장역우는 이 이야기를 듣고 「의서행」이란 노래를 짓기도 하였다.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어느 퇴임 벼슬아치가 양주에서 첩을 사려고 연달아 선을 보았다.


몇 집이나 돌아도 죄다 성에 차지 않았는데,

유독 어느 할멈이 내놓은 열네댓 살가량의 딸만은 마음에 흡족하기 그지없었다.

생김새가 빼어나게 예쁜 데다 기예까지 두루 갖춘 재원이었던 것이다. 

퇴임 관료는 흐뭇한 나머지 후한 값을 치르고 즉각 그녀를 사들였다.


밤이 되어 이불에 들어갔더니 여자는 기름 덩어리보다 더 매끈한 피부가 일품이었다.

신이 난 벼슬아치가 그녀의 은밀한 곳을 더듬었더니 이게 웬걸 뜻밖에도 엄연한 사내자식이었다.

기겁한 그는 무슨 영문인지 사내를 추궁했다. 

알고 보니 노파는 예쁘장한 사내아일 사들여 

정성껏 가꾸고 분장시켜 한판의 사기극을 벌인 것이었다.


날이 밝자마자 벼슬아치는 하인을 파견해 노파를 수색했다.

하지만 노파는 벌써 줄행랑을 놓은 다음이라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부아가 치밀어 속을 끓였지만, 도무지 진퇴양난이었다.


때마침 같은 해의 과거에 합격했던 아무개가 

절강에서부터 인사차 찾아왔기에 벼슬아치는 그를 붙들고 자신의 딱한 사정을 하소연했다.

아무개는 곧 그 여장남자를 만나겠다 하더니 첫눈에 반해 원가에 사들인 뒤 데리고 갔다.



이사씨는 말한다.


뜻에 맞는 지기를 만나면 제아무리 남위 같은 미인을 안겨도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

저 무식한 노파는 무슨 까닭에 쓸데없는 사기극을 벌였을꼬!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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