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가 새집을 샀는데 여우가 들끓는 바람에 고민이었다.

옷가지며 물건들을 어지럽히기는 예사였고

때로는 흙가루를 먹는 음식에 뿌려놓기도 하였다.


하루는 친구가 찾아왔는데 때마침 아무개는 출타 중이었다.

날이 저물도록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처는 맛있는 음식을 차려내 손님을 대접했다.

손님이 밥상을 물린 뒤 처는 계집종과 더불어 손님이 남긴 음식을 나눠 먹었다.

아무개는 평소 행동이 그다지 단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여우는 그가 간직해 둔 최음약을 언제인지 모르게 처가 먹을 죽그릇에 섞어 버렸다.

부인이 식사하는데 음식 안에서 장뇌(樟腦)와 사향(麝香) 냄새가 났다.

계집종에게 이유를 물었지만, 그녀는 모르겠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부인은 온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잠시도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억지로 참아도 시간이 흐를수록 열이 오르고 조갈증은 더해만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집 안에 남정네라곤 아까 온 손님뿐이었으므로

그녀는 방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손님이 누구냐고 묻자, 부인은 자신을 밝혔다.

손님은 또 용건을 물었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님은 마침내 그녀를 매섭게 물리쳤다.


“나와 당신 남편은 도덕과 의리로 맺어진 친구입니다.

나더러 그런 짐승 같은 짓거리를 하라니, 절대 그럴 수 없소이다.”


부인이 그래도 머뭇거리며 자리를 떠나지 않자, 손님은 마구 욕설을 퍼부었다.


“내 친구의 학문과 덕행이 네년 때문에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구나!”


그는 창문 너머로 그녀에게 침을 뱉었다.


부인은 너무나 부끄러워 비로소 그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고 곰곰 생각해 보았다.

문득 죽그릇에서 풍겨 나오던 이상한 냄새가 머리에 떠올라

 ‘ 혹시 최음제는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편이 싸둔 최음약 봉지를 찾아보니 과연 탁자 위며

그릇 속에 약가루가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그녀는 냉수가 이 약에서 깨어나게 한다는 사실을 익히 알았으므로 얼른 물을 떠다마셨다.

순식간에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게 되자 

그녀는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경이었다.

침대 위에서 오랫동안 뒤척이던 그녀는 점차 밝아오는 하늘을 보자

환한 낮에 다른 사람 얼굴 대할 일이 더욱 걱정됐다.

마침내 그녀는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맸다.


계집종이 발견하고 끌어내렸을 때는 숨이 거의 끊어져 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아침나절이 돼서야 겨우 약간 기척을 할 정도가 됐다.

손님은 밤사이에 슬쩍 돌아가 버리고 없었다.


아무개는 저녁나절이 돼서야 집에 돌아왔다가 자리에 누운 처를 보고 무슨 일인지 물었다.

부인은 아무 말도 않고 그저 눈물만 머금을 뿐이었다.

계집종이 마님께서 목을 매달았다고 보고하자,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처에게 이유를 추궁했다.

처는 계집종을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 사실을 고백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무개는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다 내 음탕함에 대한 징벌이니 당신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소?

다행히도 올바른 친구를 두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후 어떻게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었을꼬!”


그는 이때부터 과거의 좋지 못한 행실을 완전히 고쳤고 

여우의 장난도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다.



이사씨는 말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집 안에 독약을 감춰두지 말라고 서로 타이르지만 최음약에 대해선 말이 없으니,

이는 흡사 무기를 두려워하면서도 침대 밑에 그것을 숨기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최음제가 비상보다 무서운 것을 그들이 어찌 알꼬!

최음제를 숨겨 처첩하고만 놀아나도 귀신의 미움을 사게 되거늘,

방탕한 인간들의 음란한 행위야 약을 감춰두는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 않을까.

Posted by 김허니브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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