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서(廣西)에 사는 손자초(孫子楚)는 시문을 잘한다고 명성이 제법 자자한 선비였다. 

그는 나면서부터 손가락이 하나 더 붙은 육손이었는데, 

성격이 고지식하고 말이 어눌했으며, 

누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더라도 언제나 사실이라고 믿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임이 있을 때 어쩌다 기생이라도 합석하면 그는 항상 멀찌감치 자리를 피하곤 하였다.

어떤 사람이 이런 성격을 알고 일부러 그를 꾀어낸 다음 

기생을 시켜 껴안게 하고 온갖 장난을 다 치게 만들었다. 

손생은 얼굴뿐만 아니라 목덜미까지 벌게지면서 구슬땀을 줄줄 흘렸고,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한바탕 껄껄대며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리하여 모두 그의 바보스러운 행태를 두고 웃음거리로 삼으면서 

이름하여 ‘손바보(孫癡)’라 부르게 되었다. 


같은 지방에 크게 장사를 하는 한 노인이 살았다. 

그의 재산은 제후에 버금갈 정도였고 친척들은 모두 명문 귀족의 후예들이었다.

그에게는 아보(阿寶)라는 이름의 딸이 하나 있었는데 세상에 둘도 없는 미인이었다. 

그 딸을 위해 좋은 배필을 구하려 들자 대갓집 아들들이 다투어 청혼을 위한 예물을 보내왔지만

그 누구도 노인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즈음 손생은 상처를 하고 혼자 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를 놀리느라고 매파를 아보의 집으로 보내 구혼해 보라고 권유하자,

손생은 자기 주제도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그 말에 따랐다.

노인은 평소 손자초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너무 가난한 점이 불만이었다.

손생이 보낸 중매쟁이 노파는 방안에서 막 바깥으로 나오다가 공교롭게도 아보와 마주쳤다.

아보는 자신에게 청혼하려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고, 

매파는 손자초의 부탁으로 왔노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아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가 만약 곁가지로 난 손가락을 잘라버린다면 그 사람에게 시집가겠어.”


매파가 손생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어렵지 않은 일이오.”


하고 단언했다. 


매파가 가고 난 뒤 그는 도끼를 가져와 자신의 손가락을 찍었다. 

고통은 심장까지 파고들었고 붉은 피는 샘솟듯 흘러 그는 거의 죽을 뻔하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다. 며칠이 지나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매파에게 가서 자기의 손가락을 보여주자, 

그녀는 기겁하여 당장 아보에게 달려가 그 이야기를 전했다. 

아보 또한 그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하여 또다시 장난으로 이번에는 그의 바보티를 없애달라는 요구를 내놓았다. 

손생은 그 말을 전해 듣자 자기는 절대 바보가 아니라고 극구 변명했으나 

아보를 만나 그것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그러면서 돌이켜 생각하니 아보가 꼭 선녀처럼 예쁘다는 보장도 없는데 

왜 그렇게 자신을 높은 자리에 두는지 모르겠다는 의문도 생겨났다. 

이렇게 생각하자 그가 예전에 아보에 대해 품었던 열망은 순식간에 싸늘히 식어버렸다.


청명절이 돌아왔다. 

그 지역에는 원래 부녀자들이 교외로 나와 노는 풍속이 있었다. 

이날은 또 경박하고 낭만적인 젊은이들이 무리를 지어 여자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자기들끼리 제멋대로 인물평을 하는 날이기도 하였다. 

손생과 같은 문사(文社)에 들어 있는 몇몇 친구도 억지로 그를 끌어내면서

함께 들판에 나가자고 권유했는데, 그중에 어떤 사람이 손생을 놀리며 말했다. 


“자네가 마음에 두고 있는 그 사람을 한번 볼 생각은 없는가?”


손생도 그들이 자기를 놀리고 있는 줄을 알았다.

하지만 아보에게 조롱당했던 일 때문에 그 역시 아보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었으므로 

흔쾌히 사람들을 따라 그녀를 찾아 나섰다. 

먼발치로 어떤 여자가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데 한 떼의 불량소년들이 

마치 담장처럼 그녀를 빙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모두 입을 모아 재잘거렸다. 


“저 여자가 분명 아보다.”


그쪽으로 다가가 확인하니, 그녀는 과연 아보였다. 

손생이 찬찬히 뜯어보았더니, 아보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정말로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잠시 후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의 숫자가 더욱 늘어나자, 

아보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그 자리를 떴다.

둘러서서 아보를 구경하던 사람들은 모두 넋이 나가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녀의 인물을 품평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미친 듯이 지껄이고 있을 때 오직 손생만이 홀로 아무 말이 없었다.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 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보니, 

손생은 여전히 머물던 그 자리에 넋이 나간 채 서 있는 것이었다. 

친구들이 가자고 불러도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모두들 그를 잡아끌면서, 


“자네 혼이 아보를 따라갔는가?”


라고 놀렸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평소에도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리하여 어떤 이는 떼밀고 어떤 이는 그를 잡아당기며 왔던 길을 함께 되돌아갔다. 


집으로 돌아오자 그는 곧바로 침상에 드러누워 온종일 일어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은 모양이 어찌 보면 술에 취한 것도 같았는데 아무리 불러도 깨어나지는 않았다.

식구들은 그가 혼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광야로 나가 초혼제를 지냈지만 역시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를 두드려 깨우며 억지로 말을 시켰더니 의식이 몽롱한 채 대답한다는 말이, 


“나는 아보의 집에 있다.”


라는 것이었다. 


좀 더 자세히 물어보려 했더니, 그는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고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 

식구들은 당황하면서 백방으로 추측했지만, 그가 왜 그러는지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애당초 손생은 아보가 자리를 뜨는 것을 보자 차마 그녀에게서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러자 어느 사이엔가 몸이 벌써 그녀를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차츰 그녀에게 다가가 옷고름 사이에 끼어들었는데 그를 책망하는 사람도 전혀 없었다.

마침내 그는 아보를 따라 집까지 가게 되었고, 

그녀가 앉거나 눕거나를 막론하고 바짝 붙어 있다가 밤만 되면 서로 교합하며 함께 즐거워하였다.

그러는 동안 허기가 져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어떻게 가야 할지 도대체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아보는 매일 밤 어떤 사람과 교접하는 꿈을 꾸었다. 

남자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나는 손자초요.”


라는 대답이었다.

그녀는 내심 이상하게 여겼지만 이 일을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손생은 자리에 누운 지 사흘째가 되자 기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며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호흡이 가늘어졌다. 

걱정이 된 식구들은 사람을 시켜 아보의 아버지를 찾아가게 한 다음 

그의 집에서 손생의 혼을 불러가게 해달라고 간곡한 어조로 부탁했다. 

노인은 웃으면서 말했다.


“평소 전혀 내왕이 없었는데 어떻게 혼백을 우리 집에 빠뜨릴 수 있겠는가?”


그래도 손생의 집에서 보낸 사람이 한사코 매달리자, 그는 하는 수 없이 그러라고 허락했다.

무당은 예전에 손자초가 입었던 옷과 사용했던 짚방석을 가지고 아보의 집으로 갔다.

까닭를 들은 아보는 무척이나 놀라더니 무당을 다른 곳에 보내지 않고

곧장 자기 방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손생의 혼을 불러가게 하였다.


무당이 손생의 집 대문 앞에 이르렀을 때, 손생은 벌써 침대 위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정신이 들게 되자 아보의 방 안에 있던 화장 도구나 경대, 문갑 같은 가구들이 무슨 색깔, 무슨 물건이라고 줄줄이 꿰었는데 사실과 전혀 어긋남이 없었다.

아보는 그 소문을 듣고 더욱 놀라다가 그의 깊은 정에 은근히 감동하고 말았다.

손생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자 마치 뭔가를 잊어버린 것처럼

자나 깨나 깊은 생각에 빠져 있기만 하였다.

그는 늘 아보의 모습이 드러나기만 기다리며 한 번만이라도 그녀와 마주치길 희망했다.


욕불절(浴佛節)이 되었다.

손생은 아보가 수월사(水月寺)에 가서 향을 사르며 참배할 것이란 소문을 듣고

그날 아침 일찍부터 길가에서 눈이 빠지게 그녀를 기다렸다.

정오가 훨씬 지나서야 아보가 나타났다.

그녀는 수레의 휘장 안쪽에서 손자초를 보더니 섬섬옥수로 주렴을 걷고 손생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바람에 더욱 마음이 동한 손생이 수레 뒤를 따라가는데,

갑자기 아보가 시녀를 시켜 그의 이름을 알아오게 하였다.

손생은 열정적으로 자신을 소개했고, 그러는 사이 그의 혼은 더욱 요동을 쳤다.

그는 수레가 떠난 다음에야 비로소 귀가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 그는 또다시 병이 나 인사불성이 되더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꿈속에서 오직 아보의 이름만 불렀다. 

그리고 한편으로 자신의 혼백이 지난번처럼 영험하지 않다고 늘 한탄하였다. 

그의 집에서는 전부터 앵무새를 한 마리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새가 죽는 일이 생겼다. 

어린아이가 침상 곁에서 죽은 앵무새를 갖고 노는 것을 보자 손생은 ‘앵무새로 변할 수만 있으면

날개를 펴고 날아가 아보의 방 안에까지 들어갈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야흐로 그 생각에 골몰해 있을 즈음, 그의 몸은 벌써 앵무새가 되어 날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날아 곧장 아보의 처소에 다다랐다. 

아보는 앵무새를 보고 좋아라 하며 손으로 낚아채 

발목을 비단 실로 비끄러매고 삼 씨를 먹이로 주었다. 

일순간 새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가씨, 나를 묶지 마세요! 나는 손자초입니다!”


아보는 깜짝 놀라 발목의 결박을 풀었지만, 새는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보가 새에게 말했다.


“당신의 깊은 정은 이미 제 마음속 깊이 아로새겨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사람과 앵무새로 서로 다른 운명이 되었으니 어떻게 혼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앵무새가 응수했다.


“당신 곁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앵무새는 다른 사람이 먹이를 주면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아보가 주면 기꺼이 받아먹었다. 

아보가 앉으면 그녀의 무릎에 올랐고, 누우면 그녀의 침대 옆에 내려앉았다.


이렇게 사흘이 지나는 동안 아보는 한결같이 그를 사랑하고 아껴주었다. 

그리고 몰래 사람을 파견하여 손자초의 동정을 알아보게 했더니, 

그는 뻣뻣하게 굳어 숨이 끊어진 지 벌써 사흘이나 되지만 심장은 아직 식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아보는 다시 그에게 축수하면서 말했다.


“당신이 만약 다시 사람만 될 수 있다면 저는 죽음을 맹세하고 당신을 따르겠어요.”


앵무새는 그 말을 듣고 조잘거렸다.


“나한테 거짓말을 하는군요!”


아보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맹세하자, 

앵무새는 눈을 옆으로 내리깔고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


잠시 후 아보가 발에 헝겊을 감는 전족을 하려고 신발을 벗어 침대 아래에 내려놓자, 

앵무새는 별안간 신발 한 짝을 입에 물고 날아가 버렸다.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지만 새는 벌써 멀리 날아간 다음이었다. 

아보가 할멈을 보내 손자초의 동정을 살피게 했더니, 그는 벌써 깨어나 있었다. 

또 손생의 가족들은 앵무새가 비단신을 물고 날아오더니

별안간 땅바닥에 떨어져 죽는 것을 보고 다들 해괴하게 여기던 참이었다. 

손생은 정신이 들자마자 신발부터 찾았다. 

모두 무슨 연유인지 어리둥절하던 차에 아보가 보낸 할멈이 들어와 

손생에게 신발이 있는 곳을 물었다.


“이것은 아보가 내게 준 신표라오. 

당신의 입을 빌려 한마디 전하게 해주시오. 

나는 그녀가 내게 한 금쪽같은 언약을 잊지 못한다고 말이오.”


할멈은 돌아가 손생이 말한 대로 보고했다. 

아보는 더욱 신기하게 여기면서 일부러 시녀를 통해 이런 이야기가 어머니의 귀에 들어가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사실이 정말 그런지 확인한 다음에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의 글재주에 대한 명성은 그다지 나쁘진 않아. 

하지만 사마상여(司馬相如)처럼 가난하단 말이다. 

몇 년을 골라 겨우 이런 사위를 선택한다면 아마도 명문가의 귀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야.”


아보는 신발에 얽힌 이야기를 하면서 절대 다른 곳에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부모는 그녀의 뜻에 따르기로 하면서 사람을 보내 손생에게 자신들의 결정을 알렸다.

손생은 소식을 듣게 되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병이 순식간에 나아버렸다.

아보의 아버지가 손생을 데릴사위로 들이려고 하자, 딸이 거기에 반대하고 나섰다.


“사위는 장인의 집에 오래 머무르면 안 됩니다. 

하물며 제 낭군 될 사람은 가난하기까지 하니 시간이 흐르면 남들에게 천시당하고 말 거예요. 

저는 이미 그에게 시집가겠다고 작정했으니

초가집에 나물국을 먹고 살아도 달게 견디며 어떤 원망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리하여 손생은 아보를 친영(親迎)하여 혼례를 마쳤다. 

그들은 마치 한세상이나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상봉을 기뻐했다. 

그때부터 손생의 집안은 아보가 가져온 혼수 덕분에 약간 형편이 나아졌고 

전답도 상당히 늘릴 수가 있었다. 

손생은 독서에만 빠져 있으며 전혀 생계를 꾸려갈 줄 몰랐지만, 

아보는 재산 관리나 증식에 능숙했으므로 집안일을 가지고 손생을 번거롭게 하는 일은 없었다.


삼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집안은 나날이 부유해졌다. 

어느 날 손생은 당뇨병을 앓다가 갑작스레 죽고 말았다. 

아보는 상심하여 우느라고 눈물이 마를 새가 없었고 심지어는 먹거나 자지도 않았다. 

사람들이 달래도 듣지 않더니 급기야는 한밤중을 타서 스스로 목을 매는 일까지 벌어졌다. 

시녀가 발견하고 서둘러 구해 내 정신을 차리기는 했지만, 

그녀는 끝내 음식을 입에 대려 하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 문중의 친척들이 모여들어 손자초를 장사 지낼 채비를 하고 있을 때, 

문득 관 속에서 신음과 아울러 숨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뚜껑을 열었더니 손생은 이미 되살아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살아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염라대왕을 뵈었더니 내가 생전에 충직하고 성실했다면서 부조(部曹) 일을 맡아보라고 명하시더군. 그런데 갑자기 어떤 사람이 ‘손부조의 처가 곧 당도할 것 같습니다’라고 아뢰는 거야. 

염라대왕이 귀신의 장부를 훑어보시고 ‘이 사람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닌데’라고 말씀하시자,

그 사람이 또 이렇게 아뢰더구먼. 

‘곡기를 끊은 지 벌써 사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나를 돌아보면서, 

‘네 처의 절개와 깊은 사랑에 감동했다. 잠시 너를 다시 살려주마’라고 말씀하시더군.

그러더니 마부에게 말을 끌고 오게 하여 나를 돌려보내 주었어.”


그로부터 손생의 몸은 점차로 회복되었다. 

마침 이 해에 대비(大比) 시험이 있었다. 

시험장에 들어가기 얼마 전에 몇 명의 청년이 그를 놀려주려고 

다 함께 어렵고 생경한 문제 일곱 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손생을 조용한 장소로 데리고 가서 말했다.


“이는 아무개가 관절(關節)로 빼낸 문제들이야. 자네에게만 몰래 알려줌세.”


손생이 그 말을 정말이라고 믿으면서 밤낮으로 머리를 짜내 일곱 편의 글을 짓자, 

사람들은 속으로 다시 한번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그런데 그해의 시험관은 묵은 문제들이 표절의 폐단을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과거에 보통 나오던 문제들은 죄다 치워버리고 모조리 반대로만 문제를 냈다. 

문제지가 돌려진 다음에 보니 일곱 개의 문제 모두가 손생이 준비한 것과 그대로 일치하고 있었다.

이리하여 그는 이 시험의 장원이 되었고, 

그다음 해에는 다시 진사에 급제하여 사림(詞林)을 제수받게 되었다.

황제는 그의 평범하지 않은 내력을 듣더니 친히 그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었다.

손생이 하나하나 자세하게 아뢰자 황제는 매우 기뻐하면서 그에게 큰 상을 내렸고,

나중에는 다시 아보를 접견하고 그녀에게도 많은 상을 내렸다.



이사씨는 말한다.

집착이 그렇게 대단한 성격이라면 그의 심지는 반드시 견고할 수밖에 없다. 

그런 까닭에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은 반드시 시문에 능할 것이고, 

기예의 연마에 매진하는 자라면 반드시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게 된다. 

실의에 빠져 아무런 성취도 없는 사람은 하나같이 자기가 똑똑하다고 믿는 자들뿐이다.

기생질과 도박에 미쳐 가산을 탕진하는 일 따위야 어찌 사람이 정신 차려 해야 할 노릇이겠는가! 

그렇게 보면 지나친 총명이야말로 진짜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 손자초의 어떤 면이 바보스럽단 말인가!




(※ 욕불절(浴佛節) : 석가탄신일의 다른 명칭. 

부처가 탄생할 때 용이 향기로운 비를 뿌렸다는 전설에 따라 

사월 초파일의 법회에는 향을 담갔던 물로 불상을 씻는 행사가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친영(親迎) : 혼례 형식의 하나로 신랑이 여자의 집에 가서 신부를 맞아오는 일.


부조(部曹) : 중앙 관서의 각 부서 분과에서 일을 맡은 관리. 

여기서는 명부(冥部)의 한 부서에 소속된 관리를 지칭한다. 


대비(大比) : 명·청 시대에는 삼년에 한 번씩 향시(鄕試)를 치렀는데, 이를 대비라고 했다.


관절(關節) : 응시자가 시험관에게 뇌물을 주고 합격을 꾀하는 일. 


사림(詞林) : 한림(翰林)을 말함. 

명초에 한림원(翰林院)을 창건할 때 ‘사림’이라는 편액을 걸었던 까닭에 한림원의 별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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