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현(長山縣) 출신의 중당(中堂) 유홍훈(劉鴻訓)이 

무관 아무개와 함께 조선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안기도(安期島)라는 섬에 신선이 산다는 소문을 듣자 배를 띄워 한번 가보려고 작정했다.

하지만 조선의 대신들은 하나같이 불가함을 말하며

‘꼬마 장(小張)’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원래 안기도는 인간 세상과 두절되어 있다고 하였다. 

오직 신선의 제자인 꼬마 장만이 매년 한두 차례 왕래하기 때문에 

안기도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그에게 먼저 아뢰어야 하는데, 

꼬마 장이 좋다고 하면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 섬에 즉시 당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회오리바람이 불어 배를 전복시킨다는 이야기였다.


하루 이틀이 지난 뒤 조선 국왕이 유중당을 접견했다. 

입조하고 보니 어떤 사람이 칼을 차고 종려로 짠 삿갓을 쓰고 단상에 앉아 있는데

나이는 서른 살 남짓으로 풍채며 용모가 수려하면서도 깔끔했다. 

유중당이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가 바로 꼬마 장이라는 답변이었다. 

유중당이 안기도에 가고 싶다는 자신의 염원을 털어놓자, 꼬마 장도 선선하게 허락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은 조건을 달고서였다.


“부사(副使)인 아무개 무관은 같이 갈 수 없습니다.”


그는 또 밖으로 나가 종자들을 두루 살피더니 

오직 두 사람만이 유중당을 따라나설 수 있다고 하였다.

점검이 끝나자 꼬마 장은 배를 준비시킨 뒤 유중당을 데리고 함께 길을 떠났다. 

뱃길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전혀 가늠할 길이 없었다. 

그저 미풍이 살랑살랑 불어와 마치 구름이나 안개를 젖히고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한참을 흘러가고 나자 어느덧 안기도에 도착했다는 전갈이었다.

그때는 혹한이 몰아치는 엄동이지만 섬의 기후는 온화하고 따뜻했으며

들꽃들이 바위며 골짜기 여기저기에 무리 지어 피어 있었다. 

꼬마 장은 그들을 인도하여 어떤 동굴로 데리고 갔다. 

동굴 안쪽에는 노인 세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중이었다. 

동쪽과 서쪽에 앉은 노인들은 냉랭한 태도로 유중당을 거들떠보지 않았지만 

가운데의 노인만은 몸을 일으켜 손님을 맞이하고 인사를 나눴다.


유중당이 좌정하고 난 뒤 노인이 차를 내오라고 소리 지르자 동자 하나가 쟁반을 들고 밖에 나갔다. 

동굴 바깥쪽의 석벽에는 쇠못 하나가 꽂혀 있었는데 뾰족한 끝부분이 바위에 깊이 처박힌 상태였다. 동자가 쇠못을 뽑자 순식간에 물줄기가 뿜어져 나와 찻잔에는 금세 물이 가득 고였다. 

잔이 채워지자 동자는 다시 쇠못을 꽂아 쏟아지는 물줄기를 막더니 

쟁반을 받쳐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잔 속의 물은 푸르스름한 빛깔이었는데 유중당이 슬쩍 맛을 보았더니 

어찌나 차가운지 이빨이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그는 한기가 두려워 더 이상 잔을 입에 대지 않았다. 

노인이 동자를 돌아보며 턱짓을 하자, 

아이는 찻잔을 가져가 유중당이 남긴 물은 자기가 마셔버리고 다시 아까의 장소로 갔다. 

그리고 쇠못을 뽑고 물을 채워서 되돌아왔는데 

이번에는 향기와 김이 설설 끓어오르는 모양이 마치 화로에서 갓 꺼낸 차처럼 보였다. 

유중당은 내심 깜짝 놀라면서 자기 운명에 대한 지침을 내려달라고 노인에게 부탁했다.


“나는 세상 밖의 사람이라오. 

지금이 어느 해 무슨 달인지도 모르는 판에 무슨 수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헤아리겠소?”


노인이 웃으면서 대답하자, 유중당은 다시 불로장생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그런 따위는 부귀 가운데 계신 분이 능히 해낼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유중당이 몸을 일으키며 작별을 고하자 꼬마 장이 여전히 그의 귀로를 배웅해 주었다.

조선 땅에 당도한 유중당이 자기가 겪었던 이상한 일들을 이야기했더니, 

국왕은 몹시 애석해하며 탄식을 그치지 않았다.


“당신이 찻잔의 냉수를 다 마시지 않은 것이 아깝구려. 

그 물은 천지와 더불어 생겨난 옥즙(玉液)이라오. 한 잔으로 백 년의 수명을 늘렸을 것을.”


유중당이 귀국할 준비를 하자, 

조선 국왕은 종이와 비단으로 여러 겹 싼 선물을 내주면서 

바다 근처에서는 절대 풀어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유중당은 바다를 벗어나자마자 서둘러 물건을 끌렀는데

얼마나 꽁꽁 동여맸는지 수백 겹이나 포장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까지 모두 끄르고 나니 안에서는 거울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바닷속 용궁에 사는 용족(龍族)들의 모습이 한눈에 또렷이 들어왔다.

바야흐로 정신을 집중하고 응시하는 사이, 

갑자기 해일이 다락보다 높게 일어나 흉흉한 기세로 밀어닥쳤다. 

일행은 깜짝 놀라 줄달음질 쳤지만 조수는 휘몰아치는 비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그들에게 덮쳐왔다. 

공포에 떨던 유중당이 물결을 향해 거울을 던지자 조수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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