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자재(馬子才 順天)는 순천(順天) 사람이다. 

집안이 대대로 국화를 좋아했지만 그의 대에 이르러서는 유별나게 꽃을 사랑했다. 

그는 좋은 품종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반드시 사들여야 직성이 풀렸고, 

때로는 천릿길도 마다치 않고 꽃을 찾아 길을 떠났다.


하루는 금릉(金陵)에서 온 나그네가 그의 집에 투숙했다가 

자기 사촌이 갖고 있는 한두 가지 국화는 북방에 없는 희귀한 품종이라고 말해 주었다. 

마자재는 그 말을 듣자 당장 마음이 동해 곧바로 행장을 꾸린 뒤 나그네를 따라 금릉으로 갔다. 

나그네가 여러모로 힘을 써준 덕분에 마자재는 가까스로 두 모종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는 꽃모종을 보물처럼 깊숙이 간수했다.

귀로에 오른 마자재는 도중에 한 소년과 만나게 되었다. 

소년은 나귀를 타고 어떤 유벽거(油碧車)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생김새가 준수하고 풍채는 매우 날렵했다. 

마자재는 차츰 그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소년은 자신을,


“성이 도(陶) 씨입니다.”


라고 소개했다. 

그의 언사는 몹시 기품이 있었으며 우아했다. 

더불어 이야기하는 사이, 

소년이 그에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었으므로 마자재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소년은,


“꽃의 품종에는 나쁜 것이 없어요. 누가 가꾸고 물을 주느냐에 따라 우열이 달라지지요.”


라고 하더니, 이어서 국화 재배법에 관한 나름의 견해를 그에게 들려주었다. 

설명을 듣고 난 마자재는 몹시 기분이 좋아져서 그들의 목적지를 물었다.


“어디로 가는 길이신가?”


“누님이 금릉에 염증을 느끼시는지라 북쪽 어디 적당한 지역을 찾아가 살려고요.”


마자재는 기쁨에 넘쳐 응수했다.


“내가 비록 가난하지만 몇 칸짜리 초가집은 빌려줄 수 있다오. 

누추하고 퇴락했다는 점만 꺼리지 않으시면 번거롭게 다른 곳으로 갈 필요가 없을 것이오.”


도생은 곧 수레 앞으로 달려가 누나와 그 일을 상의했다. 

수레 안에 있던 사람은 주렴을 걷고 도생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이가 스물 남짓한 절세미인이었다. 여자는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이 비좁은 것은 아무래도 괜찮다. 하지만 뜰은 꼭 넓어야 해.”


마자재는 도생을 대신하여 그렇다고 대답했고, 결국 그들은 함께 순천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마자재의 집 남쪽은 황폐한 채마밭인데 서너 칸짜리 작은 초가가 딸려 있었다. 

도생은 그곳을 보자 대단히 기뻐하며 그 집에 눌러살기로 결정했다. 

그는 날마다 마자재가 사는 북쪽 집으로 건너와서 그를 위해 국화를 돌보았다. 

이미 시들어버린 국화라 하더라도 그가 뿌리를 뽑아 다시 심어주면 되살아나지 않는 꽃이 없었다. 

하지만 도생의 집 살림살이는 대단히 어려워서 

그가 날마다 마자재와 함께 끼니를 넘기는 것이 고작일 뿐, 

그의 집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올라간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마자재의 아내인 여 씨(呂氏) 또한 도생의 누나를 무척이나 좋아해 

수시로 양식을 보내주며 그녀를 보살폈다. 

도생의 누나는 이름이 황영(黃英)으로 이야기를 무척 감칠맛 나게 잘하는 여자였다. 

그녀는 늘 여 씨의 처소로 건너와 함께 바느질하거나 길쌈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하루는 도생이 마자재에게 말했다.


“당신네 집은 본래부터 부유하지 못한데 저까지 날마다 밥을 축내며 신세 지고 있으니, 

이 어찌 오래갈 일이겠습니까! 지금 형편을 보고 계획을 하나 세웠습니다. 

앞으로 국화를 가꿔서 팔면 그 또한 생계를 꾸릴 수단이 될 듯하군요.”


마자재는 원래 고고한 성품이었으므로 그 말을 듣자 도생을 몹시 비루하게 여기며 빈정거렸다.


“나는 그대가 풍류를 아는 고결한 선비라서 응당 안빈낙도(安貧樂道)하리라고 생각했네.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 동리(東籬)를 저자로 만들어 국화를 욕보일 참이군 그래.”


도생이 그 말을 듣더니 웃으면서 대꾸했다.


“자기 힘으로 밥을 먹는 것은 탐욕이 아니고, 꽃을 파는 일도 속된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물론 구차하게 부자가 되어선 안 되겠지요. 

하지만 일부러 가난하게 살려고 애쓸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마자재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도생은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그때부터 도생은 마자재가 버린 잔챙이 가지라든가 

열등한 종자들을 모두 주워서자기 집으로 가져갔다. 

그러고는 마자재의 집에서 다시는 잠자거나 밥을 먹지 않았고 

일부러 불러야만 어쩌다 한 번씩 들렀다.


얼마 후 국화꽃 피는 계절이 되었다. 

마자재는 도생의 집 문전이 마치 시장바닥처럼 왁자지껄하자

이상하게 여기며 그의 집으로 건너가 보았다. 

문 앞에는 꽃을 사러 온 사람들이 어떤 이는 수레에 싣고 

어떤 이는 어깨에 둘러메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오가고 있었다. 

도생이 파는 꽃은 마자재도 처음 보는 신기한 품종들뿐이었다. 

마자재는 도생의 탐욕에 혐오감이 일어 그와 절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가 좋은 품종은 몰래 감춰두고 자기 혼자만 키운 것이 한편 얄밉기도 하였으므로

 한바탕 욕설이나 퍼부어 주려고 도생의 집 사립문을 두드렸다.


도생은 문을 열고 나와 마자재를 보자 그의 손을 이끌어 안쪽으로 데려갔다. 

들어가 보니 원래의 황폐했던 정원 백 평은 모두 국화밭이 되어 집터 외에는 빈틈이 없었다. 

또 이미 꽃을 파낸 자리에도 다른 가지를 꽂아 채워놓고 있었다. 

밭고랑 사이에 심어진 국화들은 하나같이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었는데 

아름답고 오묘하지 않은 품종이 없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모두 이전에 자기가 뽑아서 내버린 것들이었다. 

도생은 집 안으로 들어가 술과 안주를 내왔고 국화밭 옆에 술자리를 마련하며 말했다.


“저는 가난 때문에 청빈의 지조를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요행으로 날마다 푼돈이 들어와 우리가 함께 흠뻑 취할 정도는 되었어요.”


조금 있으니 방안에서,


“삼랑(三郞)아.”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도생이 대답하고 건너가더니 곧이어 생전 보지도 못한 음식들을 쟁반에 받쳐들고 나왔다.

요리는 매우 훌륭했고 입맛에도 맞았다. 

내친김에 마자재가 도생에게 물었다.


“자네 누님은 왜 아직 시집가지 않으셨는가?”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언제인데?”


“마흔세 달 뒤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마자재가 캐물어도 도생은 웃기만 할 뿐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날 두 사람은 통쾌하게 술을 마시고 취해서야 헤어졌다.


하룻밤이 지난 뒤 마자재가 다시 건너갔더니,

어제 새로 심은 모종이 벌써 한 자 높이로 자라나 있었다.

그는 놀랍고 신기해서 도생에게 그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졸랐지만,


“이런 능력은 분명 말로 전수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당신은 꽃을 팔아서 밥을 먹는 것도 아닌데 그 방법을 어디다 쓰시려고요?”


하는 대답을 들었을 뿐이었다. 


다시 며칠이 지나자 꽃을 사려는 사람들로 들썩이던 문간이 어느 정도 조용해졌다.

도생은 국화를 캐내 짚방석으로 잘 싸더니 몇 대의 수레에 나눠 싣고 길을 떠났다.

해가 바뀌고 봄도 거의 절반이나 지나고 나서야 도생은 남방의 진기한 화초를 싣고 돌아왔다.

그는 성안에 들어가 꽃시장을 벌이더니 열흘 만에 모두 팔아치우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국화를 돌보았다.


작년에 도생에게서 꽃을 샀던 사람들은 그 뿌리를 살려두었어도 

이듬해가 되자 모두 열등한 품종으로 변해 버렸으므로 다시 그에게 몰려들어 꽃을 사 갔다.

도생은 이리하여 날로 부자가 되었다. 

일 년 만에 집을 늘려 짓더니 이년 뒤에는 아예 커다랗게 저택을 새로 지었다.

토목 공사를 벌일 때마다 전부 내키는 대로였고 주인과는 한마디 상의하는 일조차 없었다.

점차로 예전의 꽃밭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집들이 대신 들어서게 되자 

다시 담장 밖에 있는 밭을 사들여 사방을 울타리로 두르고 전부 국화를 심었다.

가을이 되자 도생은 다시 꽃을 수레에 싣고 떠났다. 

그러나 이듬해 봄이 다 지난 다음에도 도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즈음 마자재의 아내가 병들어 죽었다. 

마자재는 황영을 후처로 맞아들일 요량으로 다른 사람을 시켜 넌지시 자기 뜻을 비쳤다.

황영은 단지 미소만 짓는 품이 그 말에 동의하는 눈치였으나

도생이 돌아오고 나서 다시 결정하자고만 말할 뿐이었다.


다시 일 년여가 지났지만 도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황영은 도생이 집에 있던 때와 마찬가지로 하인을 감독하여 국화를 가꿨다.

돈을 버는 것도 다른 장사치들과 전혀 다름이 없었다.

그녀는 마을 밖에 있는 기름진 밭 스무 마지기를 사들였고 집도 더욱 웅장하게 새로 지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복건성에서 왔다는 나그네 한 사람이 도생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뜯어보니 누나더러 마자재에게 시집가라고 당부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편지를 부친 날짜를 살펴보니 바로 마자재의 아내가 죽던 날이었다.

국화밭에서 술을 마시며 황영의 결혼을 이야기하던 때로부터는

꼭 마흔세 달 만의 일이었으므로 마자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편지를 황영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혼인 예물은 어디로 보내면 좋겠소?”


황영은 납채를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다.

또 원래 살던 집은 비좁으니 마치 데릴사위가 들어오듯

마자재가 남쪽 집으로 옮겨와 살면 좋겠다는 희망을 내비쳤다.

마자재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고 택일하여 혼례를 올린 다음 황영을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황영은 마자재에게 시집온 이후 남쪽 집과의 사이에 벽을 터서 

문을 만들고 날마다 건너가 종들을 감독했다. 

마자재는 아내가 자기보다 부자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황영에게 

남쪽과 북쪽 집의 가계부를 따로 써서 서로 뒤섞이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항상 당부했다.


하지만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황영은 매번 남쪽 집에서 가져왔으므로 

반년도 못 돼서 손닿는 것은 모두 도 씨 집의 물건이 되었다. 

마자재는 즉각 사람을 시켜 일일이 되돌려보내고 

아울러 다시는 그곳에서 물건을 가져오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하지만 채 열흘도 지나지 않아 두 집의 물건들은 또다시 뒤섞이게 되었다. 

가져오면 다시 갖다 놓는 일들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자 마자재도 번거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황영이 웃으면서,


“진중자(陳仲子) 노릇이 귀찮지도 않으세요?”


하고 놀리자, 

마자재는 몹시도 부끄러워 더는 따지지 않고 모든 것을 황영이 하자는 대로 따르게 되었다. 

황영이 기술자를 불러모으고 건축 자재를 사들여 토목 공사를 크게 일으켜도 그는 막을 수가 없었다.


몇 달이 지나자 누각과 건물들이 연달아 들어서 

아래위 두 집은 마침내 하나로 합쳐졌고 더 이상 경계를 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황영은 마자재의 뜻을 존중하여 대문을 닫아걸고 다시는 국화를 내다 팔지 않았다.

그런데도 씀씀이는 다른 대갓집보다 호사스러웠으므로 마자재는 혼자서 안절부절못하다가 말했다.


“나의 삼십 년 맑은 덕행이 모두 당신 때문에 망가지고 말았소. 

지금 이 세상에 구차하게 살아 숨 쉬고는 있다지만 

마누라 치마폭에 휩싸여 얻어먹고 사는 처지가 되었으니, 

장부의 기개라곤 터럭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구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하나 나만은 가난하길 원한다오!”


황영이 말했다.


“저는 결코 탐욕스럽거나 치사한 인간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라도 웬만큼 넉넉하게 생활하지 않는다면, 

천년 뒤의 사람들은 도연명을 두고 가난한 상놈이라 

백 대가 지난 뒤에도 뜻을 펴지 못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애오라지 우리 가문의 팽택령(彭澤令)이 

남들에게 조롱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뿐입니다. 

그렇다 쳐도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지만 

부자가 가난하게 지내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지요. 

당신이 용돈을 제아무리 마음껏 뿌려도 저는 결코 아까워하지 않겠습니다.”


“남의 돈으로 선심을 쓰는 것이 어째서 대단한 수치가 아니란 말이오?”


마자재의 응수에 황영이 이어서 말했다.


“당신은 부유해지고 싶지 않다지만 저 또한 가난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하는 수 없군요. 당신과 갈라서 사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겠어요. 

고결한 분은 저절로 고결해질 테고 속된 인간은 스스로 속물이 되면 그만이니 

서로 방해될 일이야 없겠지요!”


황영은 정원에 초가를 한 채 짓고 마자재를 입주시킨 다음 

예쁘장한 계집종을 골라 그의 시중을 들게 하였다. 

마자재는 그곳에 기거하게 되면서부터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지만 며칠이 지나자 황영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을 시켜 불러도 그녀는 오지 않았으므로 자신이 직접 갈 수밖에 없었다.

하룻밤 뒤 그는 다시 황영에게 갔고 어느덧 이런 식의 생활이 일상화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황영은 또 웃으면서 말했다.


“동쪽 집에서 밥을 먹고 서쪽 집에서 주무시는 형국이구려. 

청렴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걸요.”


마자재 역시 자기 꼴이 우스웠으므로 아무 대답도 못 하다가 결국은 다시 예전처럼 합쳐 살게 되었다.


나중에 마자재는 일 때문에 금릉에 가게 되었다. 

때마침 국화가 피어나는 가을이었다. 

그는 이른 아침 꽃집 앞을 지나다가 가게 안에 수많은 국화 분이 나열된 광경을 보았는데, 

꽃을 가꾼 솜씨나 꽃송이 모양이 매우 빼어나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쩌면 도생이 키운 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마자재는 꽃집 앞을 서성이며 

누구라도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주인이 나왔는데 과연 도생이 틀림없었다.

마자재는 기쁨에 겨워 헤어진 이후 있었던 일들과 그리웠던 마음을 모두 이야기하고

그날은 도생의 집에서 묵었다. 

마자재가 도생에게 함께 돌아가자고 청하자, 그는 자기 나름의 복안을 설명했다.


“금릉은 제 고향이니 장차 여기서 혼인하고 살랍니다. 

그동안 약간의 돈을 모았으니 우리 누님에게 좀 전해 주시죠. 

연말이 되면 꼭 틈을 내어 잠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마자재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더욱 고집스럽게 도생을 졸랐다.


“다행히도 집안이 풍족하니 앉아서도 호강할 수 있다네. 

다시 장사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는 가게 안에 버티고 앉아 종더러 대신 가격을 매겨 싼값에 팔아치우게 하였다.

물건은 며칠 만에 모두 팔렸다.

마자재는 도생을 재촉하여 행장을 꾸리게 한 다음 배를 빌려 타고 북쪽으로 올라갔다.

집에 도착해 보니 도생의 누나는 벌써 집을 청소하고 침대에 이부자리까지 새로 깔아놓은 모양이

 흡사 동생이 돌아올 줄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 같았다.


도생은 행장을 풀자마자 인부들을 감독하여 정자며 정원을 대대적으로 수리했다.

공사가 마무리되자 그는 날마다 마자재와 더불어 바둑을 두거나 술을 마실 뿐

다른 친구는 도무지 사귀려고 들지 않았다. 

마자재는 도생을 위해 혼인을 주선했지만, 그는 언제나 사양만 하고 응하지 않았다. 

누나는 계집종 둘을 보내 그의 시중을 들게 했는데, 

이렇게 삼사 년이 지나는 사이 딸 하나가 태어났다.


도생은 원래부터 호주가였지만 사람들에게 취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마자재의 친구인 증생(曾生)도 주량으로 대적할 사람이 없는 사람이었다.

마침 증생이 마자재를 보러 왔기에 그는 증생을 도생에게 소개하고 

더불어 술을 마시며 주량을 비교하게 하였다. 

두 사람은 양껏 술을 마시고 매우 기분이 좋아 서로가 늦게 만난 것을 한탄했다.

아침나절부터 한밤중 사경(四更)에 이를 때까지 마신 술을 계산해 보니 각자가 

백 병을 헤아릴 정도였다. 

증생은 진흙처럼 흐물흐물하게 취해 앉은자리에서 잠들었지만, 

도생은 자기 방에 돌아가 자려고 몸을 일으켰다. 

문을 나서서 국화밭을 지나는 순간 그는 마치 산이 무너지듯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쓰러졌다. 옷가지는 고스란히 곁에 놓인 채였는데, 

도생은 땅바닥에 몸이 닿자마자 곧 사람 키만큼 높이 자란 국화로 변했다.

가지에 달린 십여 송이의 꽃은 모두 큼직큼직해서 사람 주먹보다도 컸다.

마자재가 기절할 듯이 놀라 황영에게 달려가 그 이야기를 전하자,

그녀도 서둘러 달려 나오더니 국화를 뽑아 땅 위에 눕히면서 중얼거렸다.


‘어쩌자고 이런 지경에 이르도록 취했담!’


그녀는 옷으로 국화를 덮고 마자재와 함께 돌아가면서 절대 들여다보아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날이 밝은 뒤 다시 가서 살폈더니, 도생은 국화 밭머리에 그대로 누워 있었다.

마자재는 그제야 두 남매가 국화의 정령임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도생과 황영을 더욱 사랑하고 존경했다. 

도생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난 뒤부터 더욱 호탕하게 술을 마셔댔다. 

그는 늘 편지를 써서 증생을 불러왔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저절로 막역한 친구가 되었다.


화조절(花朝節)이 되자 증생이 내방하면서 

두 명의 종을 시켜 약재를 담가 빚은 배갈 한 동이를 짊어지고 왔다.

그는 도생과 마자재를 불러 함께 마시기 시작했는데, 

단지가 거의 비었을 때도 두 사람은 별로 취한 것 같지 않았다.

마자재는 슬쩍 다른 술병을 단지 안에 부어 넣었고, 두 사람은 그것도 모두 마셨다.

증생은 인사불성으로 취했기 때문에 그의 종들이 주인을 업고 집으로 돌아갔고,

도생은 땅바닥에 누워 또다시 국화로 변했다.


마자재는 그 광경을 본 적이 있었으므로 전혀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고

황영이 그랬던 것처럼 국화를 뽑은 다음 곁에서 그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한참 뒤부터 이파리가 시들시들 마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마자재가 깜짝 놀라 황영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말하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쳤다.


“맙소사, 당신이 내 동생을 죽였구려!”


황영은 달려가 국화를 살펴보았지만, 뿌리와 줄기는 벌써 시든 다음이었다. 

그녀는 슬픔에 목이 멘 채 국화의 줄기를 잘라 화분에 심었고 안방으로 가져가 물을 주며 보살폈다.

마자재는 죽고 싶도록 후회하면서 증생을 매우 원망했다.

며칠 뒤 들려온 소문으로는 증생도 그날 너무 취해서 벌써 죽었다는 것이었다.


화분 속의 꽃은 차츰 싹을 틔워 꽃봉오리를 맺더니, 구월이 되자 활짝 꽃망울을 터뜨렸다.

줄기는 짧고도 튼튼했으며 꽃은 분홍색이었다. 

냄새를 맡아보면 술 향기가 나서 ‘취도(醉陶)’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술을 뿌려주면 꽃이 더욱 무성하게 피어났다.

훗날 도생의 딸이 장성하게 되자 벼슬아치의 집으로 시집을 보냈다. 

황영은 늙어 죽을 때까지도 별달리 이상한 행적은 없었다.



이사씨는 말한다.

청산백운인(靑山白雲人)이 결국에는 술에 취해 죽고 말았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를 두고 안타까워하지만 그 자신만은 스스로 죽음을 통쾌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취도를 정원에 심어두고 매일 바라볼 수만 있다면 마치 좋은 벗을 대한 듯, 

혹은 절세미인과 마주 앉은 듯한 느낌이 들리라. 

이 품종의 국화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지 않을 수 없구나.




(※ 유벽거(油碧車) : 유벽거(油壁車)라고도 한다. 

수레 벽에 기름을 칠해 장식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옛날 여자들이 타는 수레였다.


동리(東籬) : 국화를 심은 뜨락.


진중자(陳仲子) : 전국 시대 제(齊)나라 사람. 

‘회남자(淮南子)’ 범론훈(氾論訓)에서는 그를 두고 “절개가 곧고 행동은 저항적이었다. 

더러운 임금의 조정에는 들어가지 않고 난세의 음식은 먹지 않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

(立節抗行, 不入汚君之朝, 不食亂世之食, 遂餓而死)”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맹자는 그의 행위가 널리 퍼진다면 사람은 모두 지렁이가 되고 말 거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염결지사(廉潔之士)의 표본 같은 인물이다.


팽택령(彭澤令) : 도연명은 일찍이 팽택현령을 지냈는데, 

황영도 성이 도씨이기 때문에 우리 가문의 팽택령이라고 말한 것이다.


화조절(花朝節) : 음력 이월 십오일은 백화(百花)의 생일이라 하여 화조절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몽량록(夢梁錄)’의 ‘이월망(二月望)’에 보인다. 

어떤 책은 이월 십이일, 혹은 이월 이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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